"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 천상병은 '귀천(歸天)'이라는 시에서 이승에서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했다.

죽음이라는 삶의 끄트머리에서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마치 즐거운 나들이 왔다가 떠나는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러나 죽음은 모두가 두려워 한다.

현세의 고통에서 구원되고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기 보다는,모든 것이 끝이요 상실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까닭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이러저런 얘기로 인해 더욱 증폭되고 커지는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내세를 믿는 종교가 크게 성행하고 있는데도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을 금기시하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요즘 들어 '죽음관'에 대한 다양한 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철학연구회가 마련한 세미나가 오늘 열리는가 하면,봉은사에서는 10회에 걸쳐 '죽음 체험교실'을 연다.

지난달에는 세계적인 죽음학자인 알폰스 디켄 박사가 한국죽음학회 초청으로 서울에 와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모든 행사에서의 화두는 웰다잉(well-dying)이다.

웰빙이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라면,웰다잉은 '잘 죽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품위있는 죽음'이라 할 만한데,이는 인생을 화려하게 살려는 세속적인 욕심을 줄이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생활자세가 그 출발점일 게다.

죽음에 대해서는 수많은 철학자와 문학가들이 나름대로의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의미가 있을까.

죽음을 애써 기피하지 않고 이를 바르게 인식하면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는 것이다.

원족을 간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말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