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중견시인 박라연씨(55)가 다섯 번째 시집 '우주 돌아가셨다'(랜덤하우스중앙)를 펴냈다.

6년 만에 내놓은 시집의 제목이 독특하다.

우주가 돌아가시다니.

무슨 뜻일까.

"사람이나 우주나 완전히 새롭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기존의 자신을 철저히 죽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붙여봤어요.

30여년 전 돌아가신 선친의 함자가 우주이기도 한데 고인이 되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이번 시집을 내는 데 어느 정도 작용했지요."

살면서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겪기도 했다는 시인은 살기 위해선 스스로를 가볍게 비워놓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고 한다.

'이슬사다리'는 이처럼 가벼워지고 싶은 시인의 바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숨지기 직전까지 한(恨)만 마시고도/ 꽃대를 꽃신으로 밀어올린 옥화처럼/ 오직 비움의 향기를 타고/ 높이 떠 있는 사다리에 올라앉고/ 싶습니다 가까이 가서 만져보니/ 밧줄도/ 반석도 이슬방울들이었거든요.' ('이슬사다리' 중)

끝모를 바닥까지 추락해 본 시인에게 어느날 문득 사람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찾아온다.

삼라만상도 우주도 모두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깨달음에 이른 것.

등단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가 지상에서 부르는 사랑노래였다면 이번 시집 들머리의 17행짜리 시 '목계리'는 깨달음의 정점에서 피워올린 우주의 절창이다.

'적막 속 어딘가에 집 한 채만 보여도/ 왕산(王山)은 그 기(氣)를 바꾼다/ 수십만 평의 산을 거뜬히 먹여 살리는 것은/ 한 됫박쯤 될까 말까 한/ 몇 사람의 숨소리일 것이다.' ('목계리' 중)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