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세계 각국에서 5000만부나 팔렸다는 소설 '다빈치 코드'가 영화로도 나왔다.

이 작품은 말도 많고,문제도 적지 않다.

예수가 결혼해 자손을 오늘까지 남기고 있다니 기독교계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나는 가장 긍정적인 측면을 다소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공상과학 소설도 아니면서,탄탄한 과학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에서 끝까지 과학사의 주요 대목이 여럿 등장한다.

첫 부분에 나오는 '피보나치 수열'이란 수학사의 흥미로운 소재다.

레오나르도 피보나치(대략 1170∼1240)는 이탈리아 수학자이며 상인으로 아랍 수학을 유럽에 도입한 공로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이름을 딴 수열(數列)은 두 항의 합이 다음수를 이루는 것으로 1,1,2,3,5,8,13,21…로 계속된다.

1+1=2,1+2=3,2+3=5…이런 식으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또 이 수열의 극한값은 소위 '황금비(黃金比)'라는 1.618에 가까운 무리수다.

인간이 자연에서 발견한 신비의 숫자다.

사람들은 가로와 세로가 황금비를 이룰 때 가장 안정감 있고 균형 있는 아름다운 직사각형으로 느낀다.

달걀의 가로 세로는 물론이고,자연의 온갖 것이 이 비율로 돼 있어,우리는 명함이나 책도 이 비율로 만들어 낸다.

바로 다빈치의 인체비율 그림도 이를 보여주는 유명한 작품이다.

특히 예수의 후손을 지키려는 비밀결사처럼 그려진 시온수도회의 역대 회장 명단에 과학사에 빛나는 로버트 보일,아이작 뉴턴 등을 넣고 있다.

다빈치가 1510년부터 1519년 사이에 회장을 했고,보일은 1654∼1691,뉴턴은 1691∼1727년 사이에 36년 동안이나 회장을 지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주요 대목은 바로 과학사의 최고 영웅 뉴턴(1642∼1727)의 무덤 앞에서 벌어진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는 뉴턴의 무덤 말고도 수많은 영국 역사상의 위인들이 묻혀 있고,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이 소설에는 세계의 경도 기준점(또는 본초자오선)을 정하는 과정,로마 동남 교외에 있는 교황의 여름 별장에 있는 바티칸 천문대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소설가의 글처럼 원래 세계의 경도기준이 파리였다가 1888년 그리니치로 바뀐 것은 아니다.

여러 곳이 기준점으로 경쟁하다가 1884년(1888년이 아니라) 미국 워싱턴 국제 경도기준회의에서 그리니치로 정해졌을 뿐이다.

그 때 프랑스는 기권했고….뉴턴이 시온수도회 회장이었다는 내용도 억지일 듯하다.

그의 그릇된 과학사 해석은 그의 전작(前作) '천사와 악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유럽의 핵과학연구기관(CERN)과 교황청을 무대로 한 과학과 종교의 싸움이 주제이니,과학적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는 코페르니쿠스가 교회가 반대하는 지동설을 내세워 암살당했다고 썼는데,이는 잘못이다.

또 갈릴레오의 동료들이 종교에 저항하는 비밀단체를 만들었으나,교황청 탄압으로 4명이 가슴에 십자가의 낙형(烙刑)을 당해 죽고,그 후예 과학자들이 지금 교황청을 상대로 복수극을 펼친다는 내용도 너무 심한 상상이다.

너무 심한 상상력은 거짓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갈릴레오의 3대작으로 '천문 대화' '역학 대화' '진리의 도표'를 들고 있다.

'진리의 도표'란 상상의 책은 소설가로서의 자유일 수도 있겠지만,그는 갈릴레오의 '역학 대화'를 원래 제목 '새로운 역학에 관한 논의'와 달리 '조석(潮汐)에 관한 논의'라고 잘못 쓰고 있다.

잘못도 많지만 그의 소설의 풍부한 과학 내용을 보면서,38세의 미국 소설가 댄 브라운이 세계적인 히트작을 낼 수 있는 것은 그의 과학사 공부 덕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국의 소설가들도 과학 내용을 더 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