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2시간30분쯤 날아왔을까.

끝없이 계속되던 험한 산줄기 사이로 도시 하나가 나타난다.

볼리비아의 경제 중심지이자 천연가스와 원유 집산지인 산타크루스다.

미터기도 없는 택시를 잡아타자 더덕더덕 붙은 판잣집 앞에서 맨발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선 눈에 띈다.

'남미의 최빈국'이란 말이 실감난다.

다른 도시의 몇 몇 주유소엔 '국유화,볼리비아의 자산'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지만 인구 50만명의 산타크루스엔 국유화를 선동하는 벽보나 구호 등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행진곡풍의 노래에서 자원 국유화 조치가 현재진행형임을 느낄 수 있을 뿐.

택시기사한테 물었다.

"자원 국유화요? 좋지요.

그렇지만 그런다고 사는 모습이 나아지겠습니까." 택시기사의 시니컬한 답변이 이내 돌아온다.

그래서 "모랄레스 대통령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더니 "전임 대통령들이 워낙 썩어 대안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자원 국유화의 선두 주자인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중앙은행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카를 사제로(52)는 "속은 시원하다.

그러나 아직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60%에 달하는 빈곤층에는 아직 밥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외국 기업은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사석에서 "광산을 뺏길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던 한 외국계 기업 사장은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마자 "아주 행복하고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는 말만 반복한다.

우려와 논란은 오는 6월4일 대통령 결선투표를 앞두고 있는 페루에서 더욱 심했다.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자원 국유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관련 외국 투자기업이 만든 광업 및 에너지협회의 카롤스 솔라 회장은 "우말라가 당선되면 외국 기업은 다 철수하고 말 것"이라고 단언한다.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남미의 자원 국유화 도미노 현상.관련 국가와 외국 기업들의 몸은 후끈 달아오르고 있지만 정작 서민들은 무덤덤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공언한 정부가 자원 국유화를 선언한 만큼,지켜는 보겠지만 끝까지 지지할지는 성과가 나올 때까지 유보하겠다는 투였다.

산타크루스(볼리비아)·카라카스(베네수엘라)·리마(페루)=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