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정상급 패션하우스인 크리스티앙 디오르에서 한국인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10년 전인 1996년 여름 프랑스로 건너와 학업을 마치고 지금은 일선 디자이너로 맹활약중인 채규인(蔡圭仁.36) 씨.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자기 브랜드로도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에게 발탁돼 2002년 봄부터 함께 일하고 있다.

갈리아노의 이름으로 출품되는 옷들 가운데 일부는 그가 디자인한 것들이다.

그의 작품은 이미 몇 차례 국제적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각국 패션계에서 교과서처럼 통용되는 자료집에도 여기저기 실려 실용화되고 있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와 뉴욕에서 충분히 인정받은 그는 이제 서서히 자기 브랜드를 준비중이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어차피 자기 이름을 걸고 가야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길이라면 지금쯤 나서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네요.

"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현실적 안정감으로 통제할 줄 아는 그에겐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공동작업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채씨는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거쳐 파리 의상조합학교(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에서 실무를 익힌 뒤 응용ㆍ장식미술 분야에서 프랑스 최고로 꼽히는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ENSAD. 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arts decoratifs)에 수석 입학했다.

재학중이던 1999년 파리 국제신발디자인전에서 특별상을 탄 인연으로 파리 기성복박람회에 초청받아 쇼를 열면서 프랑스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로망에 있는 국제구두박물관에서 밀레니엄 특별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 겐조와 디오르에서 연수를 하면서 다채로운 재능을 보여준 그는 갈리아노의 눈에 들어 크리스티앙 디오르 디자인실의 멤버가 됐다.

갈리아노 밑에는 채씨 같은 조수 디자이너가 20명가량 있다.

갈리아노의 이름으로 그가 디자인한 옷들은 네덜란드 우트레흐트의 유명 패션박물관인 중앙박물관에 현대 패션을 대표하는 옷 가운데 하나로 전시되고 있으며 니콜 키드먼을 비롯한 할리우드 스타 다수가 그의 옷을 즐겨 입는다.

키드먼이 그의 옷을 입은 사진이 '보그'지 영국판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작년 5월에는 26개국 700여 명이 참가한 뉴욕의 스타일 국제패션디자인 경연대회에서 최종 결선 진출자 5명에 들었다.

남성복을 여성 모델들에게 입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뉴욕타임스와 FWD 등 유력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미국 언론은 "명확하고 지적인 커팅과 발랄한 디테일, 고급스러우면서도 실용적인 소재, 데님과 니트를 이용한 위트 넘치는 매치를 통해 젊고 신선한 에너지를 표츨했다"고 평가했다.

미학적으로만 훌륭한 게 아니라 실용성에서도 뛰어난 그의 데님 의류는 존 갈리아노 디자인실에서 나온 모든 상품 가운데 최고 판매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욕심을 내서 같은 해 7월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생 제르맹 데 프레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닷새 동안 했는데, 꼼므데가르송(Comme des garcons)과 레끌레뢰르(L'eclaireur) 등 유럽과 미국의 쇼룸과 부티크들이 구입하겠다고 나서더군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파리에서 기자가 만난 패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채규인을 '미래의 재목'이나 '큰 그릇'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채규인에 대해 무엇보다도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보는 정신적 여유, 그리고 그런 여유를 디자인 속으로 통합시킬 줄 아는 능력'을 꼽았다.

'문화'와 '돈'이 함께 숨 쉬어야 하는 패션계에서 그런 능력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덕목이 아니겠는가.

당장의 시장논리에 급급하지 않고 모든 것을 시간의 긴 호흡 속에 흘려 넣는 정신적 능력 혹은 예술가적 소양. 그것을 그 자신은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물통에 물이 차 넘치듯 오래전부터 자연스레 축적된 욕구의 표출'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승화시키는 갈리아노의 재능과 역량이 그에게 간접적인 가르침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갈리아노와 함께 일하면서 보았던 브랜드 창조의 고통과 희열도 그에게는 소중한 체험이었다.

"디자이너도 혁명가여야 합니다.

70년 전 샤넬이 만든 옷들은 당시로선 도저히 입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하나의 고전이 됐지요."

파리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잠시 들른 서울 강남의 유명 백화점에서 그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옷이 버젓이 걸려 있는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는 채규인은 "한국 패션계도 당장에 좋은 걸 내려고 욕심부리지 말고 길게 보고 투자하는 느긋함을 지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는 요즘 7월 중으로 예정된 자기 브랜드의 론칭에 모든 걸 쏟고 있다.

드디어 자신의 이름으로 진열장에 걸릴 옷들을 위해 천천히, 하나하나, 확실하게 준비중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잠시 살았던 덕분에 일본어도 유창하다.

게다가 중국어, 이탈리아어까지 구사하는 그에게서 이미 '한국 출신의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자연스런 기대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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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연합뉴스) 이종호 기자 yesn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