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할리우드 감독 볼프강 페터젠(65)은 '특전 유보트'(1981)와 '퍼펙트 스톰'(2000)에서 무시무시한 바다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심리를 절묘하게 포착한 거장이다. 페터젠의 신작 '포세이돈'은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년)를 리메이크했지만 전작의 성취에 닿지 못했다.

많은 관객이 원작을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작을 능가해야 하는 리메이크작의 부담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표현방식은 진부하고 상투적이며 특수효과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거대한 재난에 직면한 인간의 공포에 대한 심리묘사가 부족하다.

영화는 호화유람선에 해일이 덮치고,배가 전복한 뒤 극소수 생존자들의 탈출과정을 다뤘다. 인물들의 여정은 재난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벌이는 사이에 재난이 닥치고,얄미운 사람이 먼저 죽고,착한 인물 중에서도 희생자가 발생한다.

거대한 해일이 배를 덮치고 배가 뒤집히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원작을 능가하는 몇 안 되는 장면일 것이다. 그렇지만 전복된 배의 천장과 바닥이 뒤집힌 광경은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느 재난현장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또한 아무런 사전경고도 없이 해일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상황은 극중 긴장감을 끌어올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견해를 빌리면 긴장감이란 등장인물보다 관객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때 생긴다. 말하자면 해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대해 등장인물들은 모를지라도 관객이 알고 있을 때 긴장감이 높아진다. 여기서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관객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해일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해일은 인물들의 성격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닥쳤다. 이로써 관객은 재난에서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기 어렵다. 그것은 생사의 기로에 선 인물 간의 고뇌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은 탓도 있다.

원작에서 진 핵크만이 하느님을 향해 원망섞인 목소리로 절규하는 대목은 아직도 팬들의 뇌리에 생생하지 않은가.

31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