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비츠를 위하여'(감독 권형진)는 능란한 연출이 돋보이는 가족영화다.

평범한 피아노 교습 선생 지수(엄정화)가 음악천재 경민(신의재)을 우연히 발견해 키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렸다.

이 작품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단선적이다.

그러나 기둥줄거리가 한꺼풀씩 벗겨지면 흥미로운 요소들이 드러난다.

지수가 경민을 가르치는 이유는 애정보다는 자신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경민도 단순히 음악천재가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행동을 일삼는 '괴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숱한 곡절을 겪은 경민이 종반부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할 때 관객의 가슴에는 훈훈한 온기가 전달된다.

억지로 관객의 눈물샘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마침내 눈물을 이끌어 내는 연출력 덕분이다.

특히 관객의 눈물은 경민의 뛰어난 연주실력보다는 지수의 가슴앓이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신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던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달리 이 영화의 핵심인물은 경민이 아니라 그를 가르치는 지수다.

그녀는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화석화된 스승이 아니라 개인적 욕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우리 자신과 닮은 캐릭터여서 매력적이다.

그녀는 경민이 콩쿠르에서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자 단호히 결별할 정도로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반성하고 바른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도 갖고 있다.

지수는 또한 자식을 출세시키기 위해 이별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 시대 어머니의 초상이기도 하다.

경민이 명연주자로 나아가는 길목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수와의 지속적인 만남이 아니라 결별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때로는 놓아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5일 개봉,전체.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