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석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

국교단절 26년 만인 올해 미국은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트리폴리에 미국대사관을 개설하는 등 외교관계를 전면 정상화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리비아가 2003년 12월 미국과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의 완전 폐기에 합의하고,핵 관련 시설을 자진 해체해 미국으로 보내는 등 실천의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반대급부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영국의 중재와 미국과 리비아 간의 인내를 동반한 협상이 있었다.

미국과 리비아의 외교관계 복원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의 제외 등은 핵 보유를 추진하던 국가들과 미국의 갈등을 해결하는 하나의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다.

소위 '리비아 모델'로 불리는 리비아 사례는 미국이 선(先) 핵 폐기를 실천할 경우 그에 대한 반대급부 제공 약속을 반드시 지키며 정권교체나 체제전환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된다.

현재 북한은 미국의 선 핵 폐기 요구를 거부하고 있으며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도 복귀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일관된 선 폐기조치 거부에 대해 미국은 최근 들어 협상을 통한 해결보다는 실질적으로 북한이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 제재를 통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켜려고 하는 듯하다.

최근 북한 핵문제의 교착 상태로 인해 북한에 '리비아 모델'이 적용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높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

북한은 핵문제를 김정일 정권의 생존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의 적절성에 동의하면서도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 개선 모델은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적당한 전략이 없는 우리 정부에 의미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은 6자 회담 중심의 북한 핵 문제 해결 전략에서 한발 물러나 다각적인 대북 압박 전략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탈북자의 미국 망명을 받아들이는 등 북한 인권을 문제삼아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북한의 위조지폐를 이유로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가하고 있다.

북한의 다른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도 동맹국들의 협조를 얻어 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미국은 압박전략과 더불어 평화협정 카드를 내놓고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리 정부는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듯하다.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한·미 간의 정책 공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 동안 매달려 왔던 6자회담의 틀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의 대북 압박에 보조를 맞출 수도 없는 딜레마의 상황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주도적 역할은커녕 미국 주도의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구경꾼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북한을 설득하는 길뿐이다.

북한이 핵을 고집하는 한 남한도 북한을 더 이상 도울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북한 핵 폐기를 실천할 때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경제지원, 그리고 북·미수교 등이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 복원은 우리 정부에 현재의 북한 핵문제 교착상태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많은 양보'가 아니라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다.

미국과 리비아 사이의 중재자였던 영국의 역할이 전략부재의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이며 '리비아 모델'이 북한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