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재경부 등이 연일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고하는 ‘말 폭탄’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은 조용하기만 하다.

"작년 말부터 다시 일어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 움직임에 대해 한은도 상당한 우려를 가지고 관찰하고 있다"(이성태 총재)며 ‘선제적 금리 인상을 통한 부동산 시장 안정’을 강력히 시사해 오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집값 버블 붕괴 논쟁이 불붙고 있지만 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친데다 경기 악화 가능성과 환율 불안으로 이제는 금리 인상이라는 정책 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처지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시중 지표 금리인 국고채 금리는 한은의 정책 의지(금리인상 기조 유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접은 듯 한은이 콜금리 목표치를 인상하기 시작한 작년 10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콜금리 인상으로 과잉 유동성을 잡겠다던 한은의 정책이 '도루묵'이 된 셈이다.

◆한은,시장의 신뢰 상실

"상황이 나빠지지 않는다면 한은이 몇 개월간 취해온 통화정책 방향은 유효하다"고 거듭 강조했던 이성태 한은 총재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거의 사라졌다.

유가 상승과 환율 하락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경상수지 적자 등 환율 하락의 부정적인 영향이 점차 확산되고 여기에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마저 확대돼 콜금리 인상은 이제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오석태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 2월 금통위에서 콜금리를 4%로 인상한 것으로 한국은행의 통화긴축 사이클은 사실상 끝났다"며 "오는 6월 금통위를 포함해 향후 12개월 내에 콜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실제로 3년물 국고채는 지난 15일 연 4.81%에서 19일 4.72%로 5일 연속 하락했다.

5년물 국고채도 이 기간 중 4.98%에서 4.87%로 하락,5일 만에 0.11%포인트 급락했다.

시장이 금리 인상에 대한 한은의 의지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얘기다.

◆버블붕괴 논쟁에 한은 제외

한은의 금리동결 가능성은 부동산 거품 붕괴론이 제기된 이후 더욱 커지고 있다.

한은이 19일 금융협의회 직후 배포한 자료에는 이성태 총재가 회의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 논쟁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한은의 한 임원은 "버블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부터 논쟁거리"라며 "부동산 버블인지 아닌지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한 고강도 경고 발언이 한은 쪽에서 나온 것이라면 금리 인상에 대비할 텐데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재경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버블을 거론하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통과 흉터(경기 침체,실업률 상승 등)'를 남기는 '수술(금리 인상)'을 하기보다는 '고도의 심리전(말 폭탄)'으로 '질병(부동산 버블)'을 치유하는 '정신과적 치료(부동산에 대한 인식 변화)'를 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라는 것이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1일 한은 금통위의 콜금리 동결에 대해 '잘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동산 문제는 국지적이기 때문에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금리 차원의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재경부 입장이다.

버블 논쟁에 한은이 배제됐다는 것은 금리 인상이 배제됐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인 견해다.

◆오히려 금리하락 가능성 커져

세계 주식 시장과 원자재 시장이 급등락하는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시중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채권 시장에 몰려들면서 금리가 하락(채권값 상승)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전날 미국 시장에서도 10년물 국채 금리가 0.08%포인트 하락(채권값 상승)하는 등 국제 자금이 주식 시장에서 채권 시장으로 옮아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국내외 분위기에 비춰볼 때 한은이 콜금리 인상을 결정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