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황종원씨(29·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지난 주말 여자친구와 경기도 일산에 있는 자동차 전용극장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차량이 절반도 들어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씨는 "1년여 전만 해도 앞 뒤로 차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어 자리잡기 힘들었다"며 "분위기가 너무 썰렁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전용극장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자동차 전용극장은 탁 트인 공간에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데다 대부분 숲속이나 강변에 자리잡고 있어 2∼3년 전만 해도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나 가족 나들이 코스로 각광받았다.

이에 따라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자동차 극장이 앞다퉈 문을 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위치나 시설이 좋은 몇몇 극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극장이 20∼30%가량 손님이 감소한 실정이다.

서울의 한 자동차 전용극장 관계자는 18일 "야외 활동이 활발한 5월 들어서도 400여개의 관람석 중 절반 정도만 찰 뿐"이라고 푸념했다.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아예 문을 닫는 곳도 잇따르고 있다.

2004년말 현재 수도권의 자동차 전용극장은 30여곳에 달했지만 작년과 올해 사이 10여곳이 극장을 폐쇄했다.

인천에 사는 김연수씨(49)는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가끔 이용했던 인근의 자동차 극장에 갔는데 없어져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동차 전용극장을 찾는 사람이 줄어든 것은 내비게이션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2004년 20만대 수준에 머물렀던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 80만대로 커진 데 이어 올해는 130만대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내비게이션은 단순한 길 안내 기능에 그치지 않고 게임기,동영상 재생기,TV 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어 차 안의 '만능 엔터테이너' 노릇을 하고 있다.

특히 MP3 음악과 영화 등 멀티미디어 기능까지 지원되는 데 비해 가격은 50만원대로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전용극장을 이용하는 고객의 대부분은 이색적인 환경에서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는 젊은 연인들"이라며 "내비게이션을 활용하면 굳이 극장을 찾지 않아도 차 안에서 이 같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차량의 공회전이 금지된 것도 자동차 극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서울을 비롯한 대다수 지방자치단체들은 2004년부터 대기오염 방지를 위해 자동차 극장에서 5분을 초과해 엔진을 공회전하면 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직장인 노민국씨(32)는 "지난해 여름 자동차 극장에 갔는데 극장 측이 단속을 이유로 영화 관람 중 한두 차례,2∼3분간만 시동 거는 것을 허용했다"며 "너무 더워 창문을 열면 모기들이 들끓고 닫아 두면 내부 열기와 습기로 앞유리에 수증기가 차 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 일반 극장에 연인석이나 가족 관람석이 생긴 것도 '이색 분위기 연출'이라는 자동차 전용극장의 장점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