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6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해 비자금 1034억원을 조성하고 회사에 약 4000억원의 손실을 끼친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에 따라 변호인단과 검찰은 법정에서 비자금 조성 보고 및 지시,비자금 횡령,개인빚 탕감 과정에서 회사 손실 초래 여부 등을 놓고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첫 공판은 이달 말께 열릴 예정이다.

○"개인 용도로 사용한 바 없다"

정 회장 측 변호인단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시인하고 있다.

하지만 조성 주체는 계열사들이며,비자금도 기업 이익을 위해 사용했거나 대선자금용 등이었지 결코 정 회장 개인용도로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변호인단은 현대우주항공 유상증자 부분과 관련,"본말이 전도됐다"며 검찰의 기소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검찰은 정 회장이 개인 빚(지급보증) 1700억원을 털어내기 위해 현대우주항공의 유상증자를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

정 회장의 '지시'에 의해 계열사들이 유상증자에 참여,당시 주당 1157원이던 주식을 5000원에 사들였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이로 인해 계열사들이 입은 피해액은 모두 3584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 측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이병석 변호사는 "정부의 항공사 빅딜 방침에 따라 한국항공우주가 설립되면서 잔존법인인 현대우주항공은 부채만 떠안게 됐고,이를 파산시킬 수 없어 유상증자 대금으로 빚을 갚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시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릴 경우 총수가 지급 보증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이와 함께 정 회장 장기 구속에 따른 현대차그룹의 경영 공백과 이로 인한 국가경제적 손실 등을 감안,선처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험난한 비자금 용처수사

검찰은 정 회장의 혐의 입증을 위해서라도 재판 때까지 남은 기간 비자금의 행방 찾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현대차 임직원의 신병 처리를 최대한 미룬 것도 로비와 관련된 진술 등을 확보,정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려는 계산에 따른 수사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잇따른 악재로 전망은 밝지 않다.

무엇보다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 임직원의 진술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현대차의 양재동 사옥 증축 인허가를 둘러싼 로비의혹은 핵심 인물인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미궁에 빠지게 됐다.

그룹 계열사에 대한 부실채무 불법탕감 의혹 역시 현대차 브로커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의 '입'만 바라보는 실정이다.

검찰은 박상배 전 부총재에 대한 영장 재청구와 금융감독원과 자산관리공사 전·현직 고위 인사에 대한 소환조사에 주력한다는 방침이지만 성과는 미지수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용처수사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일·정인설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