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백성희 교수팀이 암세포의 전이 메커니즘을 밝혀낸 것은 암 정복을 향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의학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암 전이 현상은 그동안 암 극복의 최대 난제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백 교수팀은 암 전이를 차단하는 인체 내의 신물질도 발굴함으로써 이번 연구의 실용화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암 전이의 상세 원리를 밝혀내고 이를 억제하는 신물질을 찾아낸 것이다.

백 교수는 지난해 '카이1'(KAI1)이라는 유전자가 암 전이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규명,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카이1의 암 전이 억제 기능을 방해하는 '렙틴'(Reptin)이라는 단백질을 연구하면 암 전이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그동안 후속 연구를 진행해 왔다.



백 교수는 이 과정에서 랩틴 단백질과 결합하는 각종 물질들을 찾던 중 '씨름하는 단백질'이라는 이름이 붙은 '스모'(SUMO)가 암 전이에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스모가 렙틴과 떨어져 있으면 카이1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암 전이를 억제하지만 스모가 랩틴과 결합해 있을 경우에는 랩틴이 카이1의 활성화를 막아 암 전이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전립선 암세포주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스모와 렙틴의 결합 물질에서 스모를 따로 잘라내면 카이1 유전자가 활성화해 암 전이를 억제했다.

백 교수는 "결과적으로 렙틴에 스모가 붙고 떨어지는 것을 조절하면 암세포의 전이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번 결과는 스모 단백질에 의한 암 전이 억제 유전자 조절 작용을 최초로 규명한 것으로 새로운 암 치료제 발굴을 위한 기반 연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를 응용하면 모든 암의 마지막 단계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암 전이를 막고 암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연구팀은 랩틴에서 스모 단백질을 잘라내주는 '센프1'(SENP1)이라는 효소를 발굴,실험을 통해 암 전이를 막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백 교수는 "센프1과 같은 신물질들을 찾아내면 암 전이를 억제하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암 전이에는 아주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다양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네이처 셀바이올로지는 '스모가 암 전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껐다 켠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암 전이를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줬다"며 이번 연구를 높이 평가했다.

백 교수는 2002년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연구교수로 근무하면서 셀지를 비롯해 네이처 메디신,뉴런 등 세계적인 저널에 2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3년 귀국 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부임한 후에도 암 전이 억제 유전자 연구 등으로 네이처,셀,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논문을 게재했다.

이 같은 성과로 지난해 마크로젠 신진 과학자상과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을 수상했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