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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 데스크] 척화비라도 세우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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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철은 선거철인가보다.

    국민들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이념논쟁만 일삼던 정치인들이 다시 민생을 힘줘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달라진 건 없다.

    이번에도 후보들이 쏟아내고 있는 공약의 키워드는 경기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대기업 투자를 늘리고 외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저마다 규제 철폐에 앞장서겠단다.

    물론 믿는 사람들은 없다.

    그 많은 선거 공약들이 조금이라도 지켜졌더라면 이런 공약이 다시 유권자들의 귀를 간지럽힐 수 있겠는가.

    외국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선거철 정치권이 아무리 외국자본 유치를 강조해도 외국기업들은 한국을 빠져나가는데 급급하다.

    마산에 위치한 노키아TMC는 생산시설의 상당 부분을 해외로 이전키로 했다고 한다.

    국내 최대 외국계 제조업체다.

    같은 지역의 일본 소니 공장도 같은 결론을 냈고 모토로라는 경기도 덕평의 생산라인을 접었다.

    글락소 화이자 로슈 등 다국적 제약사들도 앞다퉈 떠나고 있다.

    바이오 산업 육성이라는 모토가 무색할 지경이다.

    외국기업들의 '탈(脫) 한국'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높은 인건비와 노사 갈등,각종 규제에 그렇지 않아도 보따리를 싸고 싶던 터에 원화가치마저 크게 올라 더 이상 버텨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반(反) 외국자본 정서'가 때마침 울고 싶은 이들의 뺨을 냅다 후려갈기고 말았다.

    해외 언론의 우려는 그야말로 위험 수준이다.

    론스타의 '먹튀(먹고 튀기)' 논쟁으로 촉발된 반외자 정서가 외국 자본에 대한 원천과세의 근거를 마련한 국제조세조정법 개정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경제 국수주의가 극에 이르고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원천징수 특례제도를 문제 삼을 순 없다.

    그런 법을 두고 있는 나라가 한두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간의 분위기다.

    국세청은 론스타에 백기투항을 받아내자 여세를 몰아 1년도 더 된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매각 파일을 다시 꺼내들었다.

    까르푸코리아에는 매각 발표가 나온 지 6시간 만에 조사국원들을 투입하는 기민함까지 보였다.

    어느 나라가 이토록 시끄럽게 세무조사를 하는지.

    국회도 발빠르다.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도 거래 중지와 사전심사를 받도록 하는 법안과 공공성이 강한 기업에 대한 외국인이나 외국법인 등의 주식 취득을 사전에 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속속 발의됐다.

    아무리 정상적인 활동이라 해도 이런 일이 최근 한 달 새 집중돼 일어났다면 외국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매사가 이렇다보니 요즘 기업 매각 입찰엔 외국인 이름이 아예 빠져 있다.

    외국인의 투자를 국부 유출과 동일시하던 쪽에는 아마도 반가운 소식일 게다.

    하지만 외국기업들이 새로 공장을 세우는 '그린필드 투자(직접투자)'가 사라졌다는 소식도 그저 반갑기만 할까.

    월가가 한국의 반외자 정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반외자 정서가 없다고 둘러대지만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한쪽으론 개방과 동북아 허브를 부르짖으면서 한쪽으론 척화비를 세우는 한국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응해올지 걱정스럽다.

    김정호 경제부장 j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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