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영화 '엽기적인 그녀'와 '봄날은 간다'는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여인에게 빠져드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 갈채를 받았다.

두 작품은 남자의 시선으로 여주인공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연인이란 베일에 싸인 존재임을 부각시켰다.

강지은 감독의 '도마뱀'에서도 순진한 청년 조강(조승우)에게 아리(강혜정)는 위기에 처했을 때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는 도마뱀과 같은 존재다.

아리는 조강의 초등학생,고교생,직장인 시절까지 20년에 걸쳐 세 번 '짧게' 나타난 뒤 '긴' 작별을 고한다.

조강의 눈에 아리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다.

그녀는 맑은 날 우비를 입고,도마뱀을 애완동물로 갖고 다니며,지구의 공기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또 조강에게 "여기가 금이야 넘어오지마,넘어오면 끝이야"라고 선을 긋는다.

공항과 지하철,야외 작별신 등에서 아리가 긋는 선의 의미는 연인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의 상징이다.

여기에서 아리의 거짓말은 언젠가 올 수 있는 이별에 마음의 무장을 촉구하는 제스처다.

그래서 조강은 아리의 거짓말을 믿기로 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으며 때로는 그것이 밝혀지지 않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극단적인 양식으로 극화했다.

아리의 비밀이 공개되는 순간,유쾌한 분위기는 무겁게 바뀐다.

두 연인이 취한 태도에는 진정한 사랑이란 자신의 감정(진실)을 내비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행복을 비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조강과 아리의 이별이 외계인과의 작별의식처럼 처리된 후반부는 다른 멜로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찬미한다면 사랑의 끝부분인 이별도 마땅히 찬미의 대상이란 인식이 시적인 분위기로 표현된다.

이 때문에 전형적인 멜로양식으로 작별장면이 극화된 멜로물 '파랑주의보'나 '연리지'에 비해 지루함이 덜하다.

조승우와 강혜정은 실제 연인사이다.

상영 중,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