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물자 수출통제와 관련해 기업들 사이에 퍼져 있는 생각 중 하나가 '전략물자 관련품목은 수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오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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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근 산업자원부 전략물자제도과장은 "전략물자는 '수출금지'가 아니라 '수출통제'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전략물자로 분류된 품목이라 하더라도 국제 규범을 준수하고 우리 정부의 승인을 얻는다면 수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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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느 정도의 불편이 따르는 건 사실이다.

우선 수출기업이 외국으로 내보내려고 하는 물품이 전략물자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최근엔 무역협회 부설 전략물자무역정보센터 홈페이지(www.sec.go.kr)를 통해 손쉽게 파악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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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바이어나 최종 사용자가 대량살상무기로 전용할 가능성은 없는지 여부도 체크해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략물자 해당품목은 당연히 우리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더불어 수출품이 통제 기준엔 미치지 못하더라도 외국 수입업자가 테러 등의 목적으로 물품을 구매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 경우 △해당국 정부로부터 수입증명서를 발부받아 달라고 요구하거나 △우리 정부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허가 여부를 타진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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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수입국 정부로부터 수입증명서를 확보하거나 우리 정부로부터 수출허가서를 받는 등 '주의 의무'를 다한다면,나중에 만에 하나 수출품이 대량살상무기에 연루된다 하더라도 수출업체는 면책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수출통제를 준수하는 것과 수출통제에 신경쓰지 않고 무역을 하는 것의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세계 각국 정부는 이에 대해 "약간의 비용이 수반되더라도 준수하는 것이 몇 배 유리하다"는 답을 이미 내놓고 있다.

이는 전략물자 해당품목 중 수출금지 대상은 실제 2%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반면 국제규범을 어겼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장기간 무역제재와 형사 처벌,기업신인도 추락 등 치명적인 위험이다.

미국의 경우 25년간 미국으로의 수출금지,미국 내 자산동결 등의 초강력 조치를 실행 중이다.

대기업도 파산의 위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실제 상황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의 기업들은 '스스로 알아서' 전략물자 통제제도를 지키고 있다.

이른바 자율준수제도다.

자율준수업체는 미국의 경우 4000개에 이르며 일본도 3000개에 달한다.

독일과 영국도 1000∼2000개 수준이며 일부 동유럽 국가도 3000개에 이른다.

각국의 정부는 자율준수업체에 건별로 심사를 해서 허가를 내주는 게 아니라 포괄적으로 수출허가를 내주는 등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한국은 자율준수업체(자율준수 무역거래자)가 삼성전자 삼성물산 하이닉스 캐논세미컨덕터 앰코테크놀로지 등 5개사에 불과하다.

이 업체들은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위한 별도 조직을 갖추고 강도 높은 자율심사와 자체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5개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기업은 아직도 '무사안일'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약간의 비용이 들더라도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선진기업으로 대접받느냐,몇푼 아끼느라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기업으로 남느냐는 것은 결국 기업의 선택에 달려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