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기업으로 선정된 제씨콤은 하마터면 개성공단 진출이 무산될 뻔한 아찔한 경험을 했다.

광커넥터 측정장비(세라믹 페룰)를 만드는 제조설비를 개성공단으로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 상무부의 규정을 꼼꼼하게 검토,이같은 사실을 알려줬다.

제씨콤은 하는 수 없이 중국 공장에서 광커넥터 측정장비를 만든 다음 이를 개성공단에 보내는 방식으로 제조공정을 변경,어렵사리 개성공단 물자 반출을 승인받았다.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재영솔루텍은 미국의 규정 때문에 애초 계획한 금형설비 반출을 포기하고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설비를 개성공단에 보냈다.

KT도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당초 계획보다 7개월이나 늦춰진 지난해 12월에야 개성공단 통신망을 개통하는 데 성공했다.

개성공단은 한국과 미국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뜨거운 감자'다.

우리로서는 남북 간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긴장 관계를 완화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과감한 지원을 하고 싶은 공단이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은 다르다.

개성공단을 통해 반출된 물자나 자금이 자칫 북한의 전략물자 개발에 투입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때문에 개성공단으로의 전략물자 반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성공단에 적용되는 전략물자 수출통제 규정은 두 가지.하나는 우리 정부의 대외무역법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상무부의 EAR(수출관리규정)이다.

우리의 대외무역법이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의 국제 범용 규정이라면 미국 EAR는 이보다 훨씬 까다롭다.

브라이언 닐슨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 운영위원장은 지난해 6월 국내기업 대상 설명회에서 "미국 제품이 아니더라도 미국 물품이나 기술이 10% 이상 포함된 제품을 미국이 지정하는 이란 시리아 북한 등 테러지원국가에 보낼 때는 미국 정부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컴퓨터의 윈도XP 프로그램엔 미국 기술이 들어가 있어 개성공단 내에서 이를 설치할 때는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미국 정부는 이를 어길 경우 최장 25년간 해당 기업의 미국 수출을 금지하고 100만달러 이상의 벌금과 해당자의 형사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국내 기업 일각에선 이러한 미국의 제도 운영에 대해 개성공단의 취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과도한 처사라는 항변을 내놓고 있다.

개성공단이 확대되면 전략물자 통제 규정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현재로선 그럴 생각이 없다는 데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미국 관리들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북한을 적(敵)으로 생각해 오고 있으며 1983년 미얀마(옛 버마) 아웅산 테러 이후엔 북한을 테러국으로 보고 있다"며 "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엔 북한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핵이나 테러 등 북한의 위협이 현저히 낮아지지 않는다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수 차례 표명됐다.

결국 앞으로 상당 기간은 미국의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심성근 산업자원부 전략물자제도과장은 "기업들이 미국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개성공단이 어려워질 수 있으며 이는 남북경협 확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