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용 어군탐지기와 항공관제시스템을 만드는 에코트로닉스의 성미숙 사장(39)은 지난 18일 거래처인 일본 후르노댕키 본사로 찾아가 담판을 벌였다.

올들어서만 원·엔 환율이 60원(100엔 기준) 가까이 떨어져 손익분기점 밑으로 추락하자 수출가격 인상을 위해 직접 설득에 나선 것이다.

성 사장은 한국에서 준비해 간 2000년 이후 원자재 및 환율 동향 차트를 보여주며 브리핑을 했다.


일본 담당자의 답변은 간단했다.

최근 환율 변동은 9년 만에 원상태로 돌아간 것일 뿐이고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니 이젠 고통 분담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요지였다.

성 사장은 "그나마 올 들어 세 차례 일본을 방문하는 등 정성을 보인 덕분에 '인건비에 대해서는 환율 변동분을 반영하는 것을 검토해 보겠다'는 얘기를 들은 게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에코트로닉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없는 벤처기업이었다.

일본에 탄탄한 거래처를 두고 있는 데다 수익성도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매출의 100%가 대일 수출인 에코트로닉스에 최근 원·엔 환율의 절상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2004년 100엔당 1040원 수준이던 환율이 작년 말 900원대가 무너지더니 이젠 800원 선도 위협받고 있다.

성 사장은 "작년 반기(6∼11월) 결산에서 환율 하락만으로 1억5000만원가량 적자가 났다"고 말했다.

이에 에코트로닉스는 올 2월 자재부 구매부 생산관리부 등 3개 부서를 경영지원팀으로,생산 1·2·3부를 생산팀으로 통폐합해 인원을 감축했다.

성 사장은 "회사 분위기가 너무 침체돼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달 전 직원과 함께 래프팅을 가고 워크숍을 가졌다"며 "하지만 추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무거운 분위기를 주체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에코트로닉스는 요즘 중소기업들의 사정을 대변해 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이미 환율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며 생존의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외과 수술용 봉합사 등을 수출하는 메타바이오메드 관계자는 "환율 마지노선을 달러당 1000원으로 보고 있었다"며 "지금은 손해를 감수하며 어쩔 수 없이 수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매출액의 95% 이상을 수출이 차지하는 엔터기술 관계자도 "적정 환율은 980원인데 환율이 떨어져도 제품가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난감하다"고 전했다.

수출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중소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이 환율 하락에 맞춰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해 오기 때문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요즘은 팩시밀리에서 주문서가 들어오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말로 이런 업계 사정을 대변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