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영어마을(http://english-village.gg.go.kr/paju) 하이스트리트에 있는 소극장.분홍색 가발을 쓴 여성이 영어노래를 부른다.

씩씩한 말투와 신나는 손동작,쉴새없이 터지는 웃음에 아이들은 넋을 잃고 바라본다.

쑥스러움에 몸을 꼬던 아이들이 하나 둘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지난 3일 개원한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의 하루 코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매직쇼.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이는 르네 앨런씨(29)다.

"강사 모집 광고를 뉴욕의 한 신문에서 우연히 보게 됐어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신감에 한국행을 결정했죠."

앨런씨는 뉴욕대 예술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재학시절엔 연기부터 감독 의상디자인까지 다양하게 배웠고,졸업 후에는 뮤지컬 '그리스' 팀에서 '프렌치' 배역을 맡아 1년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투어를 다녔다.

영어마을에서 그의 공식 직책은 '에듀테이너(edutainer)'.

교육과 오락의 합성 신조어로 신나게 놀면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개념이다.

"3세에서 10세까지 어린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주말에는 퍼레이드 쇼를 하고 주중엔 매직쇼와 유니세프 티셔츠만들기,요리 프로그램을 해요."

그가 주도하는 영어수업은 참으로 '연극'적이다.

"무지개송 팝콘송 등 직접 만든 노래를 불러줘요. 코믹한 광대 분장은 기본이죠."

과장된 몸짓,끊임없는 춤과 노래에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빠져든다.

교육과 연극의 조합,앨런씨의 이런 시도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2년간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아이들에게 가이드를 했다.

물론 춤과 노래도 곁들였다.

파주 영어마을 매니저 박효영씨는 "영어마을 외국인 강사 중 앨런씨는 연봉이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연극과 교육을 비교한다면 어떨까.

"가르치는 게 더 어려워요.

연극은 대본대로 움직이면 되지만 교육은 아이들 반응에 따라 즉석에서 판단해 행동해야 하니까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애드리브'가 많이 늘었다는 그.

한국 아이들이 사랑스럽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처음엔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데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한국에 온 지 한 달 남짓.

아시아 국가는 처음이다.

앨런씨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 궁금하다.

"비빔밥을 가장 좋아해요.

채식주의자라 고기와 생선은 전혀 못 먹거든요."

서울에는 세 번 가봤는데 크고 복잡하지만 편리한 도시라고 평가한다.

4남매 중 막내딸인 그는 초콜릿으로 유명한 고향 펜실베이니아주 허시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든 점이라고 한다.

천성이 밝고 긍정적인 그는 파주 영어마을 외국인 강사들 사이에서도 '사람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캐나다에서 온 수전 스니드씨는 "르네가 퍼레이드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며 치켜세웠다.

이 둘은 퍼레이드 쇼에서 광대 역할을 도맡는다.

"표정이 풍부하고 순발력이 뛰어나서 동료들이 부러워해요."

앨런씨는 영어마을에서 맺은 1년 계약이 끝나면 남아프리카로 갈 예정이다.

"한국에 오기 2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빈민층 고아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쳤어요.

어둡던 아이들이 밝게 웃는 걸 보고 보람을 느꼈죠."

자신의 능력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에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는 그.

작은 노력이지만 아이들의 인생을 바꿔놓을 거라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제일 중요한 게 바로 용감해지는 거죠.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틀리는 걸 두려워 하지 말고 무조건 입 밖으로 내뱉으세요.

어느새 영어가 몰라보게 늘어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의 한국어 실력은 어느 수준일까.

"제가 할 줄 아는 한국말은 딱 하나예요.

'물 좀 주세요.'"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