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지난 17일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짙은 황사바람 속을 달려 간 곳은 43만평에 이르는 베이징현대차 제2공장 부지였다.

공장 기공식이 열린 18일 오전에도 이곳엔 안개가 자욱했다.

비자금 수사로 어려움에 처한 현대차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베이징현대차가 새 출발선에 있다"며 "현대속도와 현대기적을 다시 쓰고자 한다"고 말했다.

중국서 '현대기적'을 일군 곳으로 평가받는 제1공장에서 동남쪽으로 2km 떨어진 곳을 새 기적을 위한 터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이다.

현대속도와 기적은 무엇일까.

쉬허이 베이징현대차 동사장(이사회 의장)은 "공장 가동 3년 만에 중국 승용차 업계 4위로 부상하고 3년간 누계 50만대 판매에 매출 78억달러를 달성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베이징현대차가 공장 가동 초기 2년간 거둔 순익(세후 기준)만도 4억8000만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현대차가 중국에서 달려가야 할 길은 지난 3년간 달려온 것보다 더욱 험난해 보인다.

베이징현대차의 경쟁상대는 GM 폭스바겐 도요타 등 외국기업과 중국기업간의 합작사였다.

하지만 여기에 중국 토종업체가 가세하기 시작했다.

지난 1분기 중국 국영 자동차회사인 치루이는 승용차 판매량 순위 3위로 뛰어오르며 베이징현대차를 추월했다.

자체 모델만으로 승부를 거는 순수 토종업체가 약진하기 시작한 최근 중국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차는 또 중국으로부터의 기술이전 요구에 직면해 있다.

공장과 함께 연구개발센터 기공식이 치러진 것도 중국 정부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하오 베이징시 부시장과 쉬허이 베이징현대차 동사장은 축사를 통해 자체 모델 개발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현대차를 압박했다.

중국에 어느 범위까지 기술을 넘겨야 할지,그럴 경우 더 앞선 기술 확보를 위해 한국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정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는 한둘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도 한국으로부터 현대차 비자금 수사 속보는 계속 날아들고 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