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부실채무 탕감을 위해 금융감독원과 자산관리공사(캠코),산업은행 등에 로비를 벌인 정황이 확인돼 검찰의 현대차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계열사인 글로비스 등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으로 금융권과 정ㆍ관계 등에 금품로비를 벌였을 것이란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으나 검찰에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13일 구속수감한 김동훈씨(전 안건회계법인 대표·57)는 2001년 7월부터 1년여간 14차례에 걸쳐 41억6000만원이란 거액을 받고 기아차 부품공급 업체인 아주금속공업과 위아(옛 기아중공업)의 채무 550억원을 탕감시켜주는 '수완'을 발휘했다.

김씨는 2001년 7월 당시 현대차 기획본부장 김모씨로부터 아주금속에 대한 산업은행 담보·무담보채무 300억원에 관해 채무조정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2002년 2~6월까지는 위아 재경담당 임원 한모씨에게서 2000억원의 채무탕감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로비를 벌인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

서울대 상대를 나와 한국회계학회 감사 등을 지낸 김씨는 평소 국책은행과 정부투자기관,금융감독 당국의 고위층 인사 등과 접촉하며 쌓은 금융인맥을 로비에 유감없이 활용한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졌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부실기업인 위아와 아주금속이 채권을 다시 취득할 수 없음에도 편법으로 채권을 재취득했고 채무탕감 과정에서 공적자금 투입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앞서 S사 대표 정모씨가 부실보험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제부처 고위인사에 대한 로비정황을 보여주는 '김재록 리스트'의 존재도 확인한 바 있다.

검찰은 이날 현대차 비자금 및 기업비리 수사를 이번 주에 일단락짓기로 한 반면,비자금의 사용처를 밝히는 로비수사는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대차와 김재록씨 로비단서들이 연일 속출하고 있어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한 수사도 예상보다 빨라질 전망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