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이 정치에 사용된 역사는 깊다.

그 중에서도 붉은 색은 고대국가 시절부터 왕과 귀족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평민들은 붉은 색의 옷을 입을 수 없었고 심지어는 붉은 계통의 집 단장도 금지됐다.

붉은 색은 지배계급의 '특권색'이었기에,16세기 초반 독일 농민들이 귀족들의 착취에 항거하면서 내건 요구조건 중의 하나가 붉은 망토를 입을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하다고 하는 빨강은 프랑스 혁명에선 '자유'로 인식됐고,러시아 혁명에선 사회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15세기 영국의 장미전쟁에서는 랭커스터가(家)가 붉은 깃발을 앞세워 요크가(家)와 싸웠다.

최근에 와서는 다양한 색깔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필리핀의 민주화 시위 때 코라손 아키노가 노란 점퍼를 입으면서 노란색은 민주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고,지난해 정권교체를 이룬 우크라이나의 반(反)정부 인사들은 오렌지색으로 몸을 둘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란색은 필리핀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상징색이 됐다.

민주화를 외치는 군중들이 노란옷으로 거리를 메웠고,'노사모' 회원들의 노란색 스카프는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색깔 마케팅이 한창이다.

서울시장의 여당 출마 예정자가 보라색을 들고 나오자,야당 후보출마를 선언한 한 인사는 녹색을 이미지색으로 채택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 광역단체 후보자들도 저마다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며 청색 황토색 등을 선거용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색깔이 선거전의 주요한 무기로 떠오른 것이다.

시각매체가 발달한 시대에 '색깔'이 '언어'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연대의식을 고취시키고,광범위하면서 가장 빠르게 의사를 전달하는데도 '통일된 색' 만한 게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가지 걱정이 앞선다.

'튀어야 산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색깔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자칫 '정책없는 이미지 정치'로 변질될까봐서다.

경계할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