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칭찬‥박창규 <한국원자력연구소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박창규 < 한국원자력연구소장 ckpark3@kaeri.re.kr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요새는 긍정적인 심리학을 전공하는 할아버지 학자와 그의 외손자 학자가 쓴 '당신의 물통은 얼마나 채워져 있습니까?'라는 책이 유행이다. 지금까지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세태에 대한 반작용이 아닌가 싶다.
칭찬은 아무리 들어도 그것이 아부나 무슨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에는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칭찬의 의도가 자기에게 어떤 이익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이는 곧 귀에 거슬리게 마련이다. 적어도 칭찬을 듣는 사람이 정상적이라고 가정을 했을 때에는 그러하다.
우리 부부는 딸아이 하나만 있다.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 유학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어버렸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현저히 떨어져서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가정이 꽤 많다. 우리 세대가 클 때만 하더라도 대개 한 집안에 다섯이나 여섯 형제쯤은 다반사였고,심지어는 열 명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산아제한 정책을 강력하게 펼쳤고,'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까지 등장했다.
옛날 기준으로 보면 우리 부부처럼 말그대로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하나만 낳은 집은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의 출산율은 현저히 낮아져 우리처럼 자식을 하나만 낳은 부부는 나라에 죄 아닌 죄를 짓게 됐다. 과학기술의 양면성 역시 이렇듯 쉽게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의 모호성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요즈음 회자되고 있는 생명과학이다. 생명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당연히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인간의 질병을 고치고,생명을 연장하고,건강하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인간을 복제한다거나 생화학 물질을 개발해 전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생명과학의 긍정적인 면 뒤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부정적인 면이다.
모든 과학기술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과학자가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우리 사회가 마냥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는 과학기술이 갖는 이런 양면성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의도 없이 취한 행위도 시대에 따라 칭찬과 비난이 엇갈린다. 하물며 특정한 의도를 띠고 진행하는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우리 정부가 뒤늦게나마 연구진실성을 검증하는 기구를 마련한다고 하니 매우 다행스럽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연구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하는 '연구진실'의 정의와 연구진실을 판단하는 문제다. 진실 판단의 주체가 인간인 이상 오류가 없을 수 없다. 따라서 문제는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를 얼마나 제대로 마련하느냐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