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1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 디지털단지역을 통과하는 시흥대로에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개통됐다. 디지털단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과 지역 주민들은 크게 반겼다. 하지만 역세권 상인들은 희비가 엇갈렸다.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유동인구의 흐름을 바꿔놨기 때문이다. 특히 시흥대로변 10여개 점포에는 악재였다.


2호선 지하철역 1번 출구로 이어지는 시흥대로변의 '또순이순대보쌈' 구로점 윤병학 점장은 2개월 전 본사에서 파견됐다. 매출이 30%나 격감해 지원을 나온 것.



대로변의 3층 건물 주인 백택수씨(58)는 입주 상인들이 고전하자 300만원이던 월세를 150만원으로 낮춰 받았다. 버스중앙차선제 실시로 지역상권이 시흥대로변에서 이면도로의 먹자골목으로 옮겨가고 있다.


먹자골목은 디지털단지와 배후 아파트단지로 이어지는 출퇴근 동선상에 있다. 먹자골목엔 '유효 소비자'가 많다. 디지털단지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 길에 '한잔'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


첫 번째 먹자골목의 '토방곱창구이' 이모 사장은 "오후 2시부터 12시간 영업하는데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손님이 꽤 몰립니다. 매출은 꾸준한 편"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의 매장은 32평,20개 테이블에 좌석은 80개. 객단가(고객 1인당 지출액)는 1만5000원 정도로 저녁에만 테이블당 2회 이상 손님이 바뀐다. 회전율이 높다는 얘기다.


'녹차먹인 돼지'의 임정희 사장은 "먹자골목 두 번째 이면도로는 영세 여인숙이 밀집한 곳이었는데 최근 들어 음식점이 늘어나면서 외식 중심으로 상권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장사가 되니 증축이나 리모델링을 하는 건물이 늘고 있다. 와바 본사의 은경환 영업이사(37)는 "디지털 단지와 지하철역 사이에 퇴근길 동선이 확실하게 형성돼 대형 점포를 낼 가치가 충분하다"며 "늦어도 여름 이전에 150석이 들어가는 100평 규모 매장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 토박이 상인들은 디지털단지 직장인들만 보고 뛰어들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고 충고한다. 주점 체인 '해피리아'의 최민식 사장은 3년 전 강남의 40평대 아파트를 팔아 10억원을 투자했지만 지금은 투자금의 절반도 못 건질 형편이라고 하소연한다. 신덕부동산 강태희씨는 고객들의 씀씀이가 작다고 말했다. "벤처타운이라고 해도 여기는 돈없이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창업한 벤처인들이 많아요."


직장인 대상 장사라 주말 장사가 특히 어렵다. 지역 상인들은 나이트클럽이나 영화관 같은 손님을 끌어모으는 대형 집객시설이 들어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찜질방도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소비자 만족도도 떨어지는 편. 여의도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동화음향산업 조현정 주임은 "음식이 맛이 없고 종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특히 고급 음식점이 없어 외국바이어 접대 등에 불편하다고 한다.


대명그룹 전산실 진광기씨(43)도 "상권의 질이 확실히 떨어지는 것 같다"면서 "그만큼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