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세력들의 강력한 퇴임 압력에도 버텨왔던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전격 사퇴를 결심한 데에는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탁신 총리는 4일 푸미폰 국왕을 알현한 직후 "차기 총리직을 수용할 수 없게 돼 유감이다"며 새롭게 구성될 내각 총리에 취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날만 해도 총선에서 유효표의 50% 이상을 얻은 것을 강조하며 총리직 수행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던 그였다.


탁신 총리가 이렇게 사퇴까지 이르게 된 배경에는 야당과 시민들의 연이은 하야 요구와 수많은 기권표가 속출한 총선 결과 등이 작용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를 사퇴하게 만든 힘은 바로 국왕이었다.


탁신 총리도 시위대들의 잇따른 사퇴 압력에 대해 "나의 사임을 명령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국왕 폐하뿐"이라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태국에서 국왕은 거의 '신'과 같은 존재다.


태국 국민들은 국왕을 역사와 전통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올해로 즉위 만 60주년을 맞은 푸미폰 국왕은 태국 6500만 국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태국의 모든 화폐에 그의 모습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태국의 국왕은 쿠데타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법 조항을 적용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 국왕이 최우선적으로 결정권을 갖고 있다.


푸미폰 국왕 역시 정치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이를 적절히 타개해왔다.


1973년 왕궁 문을 열어 반정부 시위 혐의로 수배 중이던 대학생들을 보호해 군부 정권에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는가 하면 1992년 민중봉기 때는 군부 정권에 의해 임명된 수친다 총리의 하야를 직접 권유해 군사정권을 종식시켰다.


이 때문에 반(反)탁신 시위대도 사실은 국왕의 정치 개입을 계속 요구해 왔고 결국 탁신 총리는 국왕의 권유로 최종적으로 마음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탁신 총리가 사임함에 따라 새로운 후계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태국 언론은 현재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솜킷 자투스리피탁 부총리 겸 상무장관과 하원의장을 지낸 포킨 파나쿤 부총리를 꼽고 있다.


솜킷 부총리는 경제 전문가로 탁신 경제 정책의 기본틀을 짠 주인공이기도 하며 경제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집권 타이락타이(TRT)당의 간판을 지키기 위해서는 포킨이 더욱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전격적인 총리의 사임 발표로 정치 불안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면서 5일 태국의 주가와 통화가치는 크게 올랐다.


이날 태국 증시인 SET 지수는 전날보다 3% 이상 상승해 2년여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으며 외환시장에서 바트화 환율도 큰폭으로 하락(바트화 가치 상승),한때 달러당 38.25바트에 거래됐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