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이은 '장맛 지킴이' 보성 선씨 宗家 맏며느리 김정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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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선씨 종가(宗家) 맏며느리 김정옥씨(53)는 '장맛 지키기'를 집안을 지키는 일만큼이나 중히 여긴다.
시대가 변했다 해도 여전히 '5대 봉사(奉祀)'를 철칙으로 삼는 가문이라 명절을 포함해 매년 12번씩 차려야 하는 제삿상에 꼬박꼬박 간장 된장을 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상님들께 장맛을 뵈드리는 걸로 집안이 무탈함을 알리는 셈이죠."
실제로 1989년 김씨의 시아버지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갑자기 앓아 누운 적이 있었다.
그는 곧바로 장독대로 가 항아리를 열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해 담근 간장에서 거품이 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시아버지 건강을 걱정하다 새벽에야 겨우 풋잠이 든 김씨.그런데 그의 꿈에 오래 전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나타났다.
시할머니는 "북어 세 마리를 사다가 간장에 거꾸로 꽂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김씨가 이 '계시'를 그대로 따르자 장맛이 다시 살아난 것은 물론이고 시아버지의 병도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다음 날 시할머니께 감사하다는 뜻으로 제사를 드렸죠.맛을 되찾은 간장도 제사상에 올렸고요."
이렇게 한번 제사상에 올려진 장은 따로 보관했다가 다음 해 장을 담글 때 '씨간장'으로 쓴다고 한다.
1919년 충북 보은의 현 집터로 종가를 옮긴 뒤 85년간 같은 장맛을 유지해온 비결이 여기에 있다.
제사상에 올리는 '씨간장'을 통해 발효를 돕는 종균을 대물림하는 것이다.
보성 선씨 종갓집 전통 간장은 8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진행되는 장류전시회 '대한민국 명품 로하스 식품전'에 초청되는 기쁨도 누렸다.
50여 종가에서 출품한 장류 중에서도 김씨가 담근 간장은 '금간장'으로 불리며 단연 인기다.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나트륨 결정체가 보통은 눈처럼 고운 흰색을 띠는데,이 집 간장만은 특이하게도 금빛이 돌기 때문이다.
김씨의 외아들이자 집안 종손인 종완씨는 현재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문화유적 보존학을 공부하고 있다.
학교를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와 전통가옥 문화 체험,홈스테이 등 관광상품을 개발해 종갓집을 문화상품화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장맛을 소문으로 듣고 찾아온 이들에게 한 바가지씩 퍼주고 쥐어주는 대로 돈을 받아왔던 간장 된장도 '보성 선씨' 상표를 붙여 정식 출시한다는 것이 종완씨의 계획이다.
이렇게 든든한 아들을 둔 김씨지만 걱정이 한 가지 있다.
자신에 이어 85년간 이어온 장맛을 계속 지켜갈 며느리를 보는 일이 그 것.
"제 경우도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식구가 스무 명이 넘는 종갓집 며느리로 와서 적응하느라 고생 좀 했거든요.요즘 젊은 처자가 선뜻 같은 길을 가려 할지 모르겠네요."
종갓집에 며느리가 새로 들어왔을 땐 5일 동안이나 마을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다음 잔치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여성 어디 없으신지.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