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의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지난해 삼성채권 수사 때처럼 핵심 인물의 해외 출국이라는 장애를 만났다. 글로비스 이주은 사장과 함께 2001년 12월부터 최근까지 69억8천여만원의 비자금을 만드는 과정을 주도한 재무담당 이사 A씨가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인 이달 24일 출장차 중국으로 출국해 귀국예정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 검찰로서는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상부'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순차적인 수사진행이 가능한데 정작 이 사장은 "재무이사 A씨 등 부하직원들이 비자금을 만들어왔다"며 `상부지시설'을 부인해 수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 중수부는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찾아낸 800억원대 삼성채권을 추적할 때도 비슷한 복병을 만나 수사를 중단한 경험이 있다. 삼성 구조본 박모 상무의 부탁을 받고 명동 사채시장에서 채권을 매집한 전 삼성증권 직원 C씨의 존재를 수사를 통해 찾아냈지만 정작 C씨는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기 직전 미국으로 출국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 삼성측은 검찰에 "채권 총액은 대선자금 때 드러난 게 전부다"고 말했고 중수부는 핵심인물인 C씨를 찾지 못한 까닭에 삼성채권 수사를 내사중지 상태로 한동안 서랍 속에서 묵힐 수밖에 없었다. C씨는 작년 5월 극비귀국했다가 같은 해 9월 검찰에 검거됐지만 이미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공소시효가 지나버린 뒤라서 검찰 수사는 추가 처벌 없이 삼성채권의 전체 규모를 밝히는 선에서 종결됐다. 현대차 재무이사 A씨가 삼성채권을 매집한 C씨처럼 한동안 귀국하지 않을 경우 검찰로서는 `삼성채권' 수사 당시의 `악몽'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검찰은 29일부터 김재록씨 로비의혹 수사를 `김재록-현대차 양 갈래 수사'로 전환해 현대차 비자금 사건에 수사역량을 집중하고 현대산업개발의 진승현씨 관련 사건 수사를 위해 브릿지증권을 압수수색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섰다. 삼성채권 수사 때도 중수부는 최종 수사결론을 내기 위해 에버랜드 사건 등 다양한 수단으로 삼성측을 압박해 결국 삼성이 자체 보관해온 443억3천만원의 채권을 회수하고 전체 삼성채권 규모(837억원)를 파악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런 현대차의 `삼성 따라하기' 방어전략과 검찰의 `전방위 압박' 공격전략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한지는 조만간 수사 결과로 판가름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