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트랙(one-track)에서 투 트랙(two-track)으로 수사하겠다.' 금융브로커 김재록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금까지 수사의 초점을 김씨 로비의혹에 맞췄지만 앞으로는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인 글로비스 비자금에 대한 수사도 별도로 진행하겠다고 29일 밝혔다. 이에 따라 김재록 사건과 현대차 비자금을 구분 하겠다는 검찰의 수사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현대차와 관련된 부분은 김씨 수사의 한 지류(支流)에 불과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김씨 비리가 이번 수사의 핵심이라는 얘기였다. 또 28일만 해도 물리적으로 수사팀 여력이 모자라 일단 현대차 수사가 어느 정도 교통정리된 뒤 김씨와 관련된 다른 기업들도 계속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 검찰이 하루아침에 수사 방향을 전면 수정함에 따라 현대차 비자금사건 자체가 지류가 아닌 또다른 하나의 본류(本流)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의 수사 밑그림이 이처럼 급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김씨 로비와 관련없는 새로운 비자금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씨의 로비에 현대차그룹이 관련된 정황을 잡고 지난 26일 현대차 본사와 글로비스 현대오토넷 등에 대한 압수 수색을 실시했다. 그 결과 글로비스가 국내와 국외 운송회사를 통해 69억8000만여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또다른 비밀금고를 발견했다. 금고에는 원화 및 달러화 양도성예금증서(CD) 등 50억원대의 현금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검찰로서는 회사 금고에 보관된 거액의 현금 출처를 캘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쳤다. 이와 관련,이주은 글로비스 사장(구속)은 비자금 69억8000만원 가운데 일부 사용하고 남은 돈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비자금 수사를 현대차그룹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압수물 분석 결과 포착됐기 때문에 비자금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현대차그룹에 대한 표적수사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또 현대차그룹의 전체 비자금을 들여다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러려면 엄청난 인력과 기간이 필요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대차그룹의 경영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계열사인 글로비스의 비자금으로 수사 범위를 제한하겠다는 의미다. 검찰이 "경영권 승계과정은 현재 수사 대상이 아니고 분식회계 수사를 할 계획도,현대차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도 없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글로비스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추가 단서가 확보되는 등 사건이 확대된다면 향후 현대차 비자금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검찰이 수사 강도를 높이는 게 수사 기술적인 측면과 관련있다는 해석도 있다. 김씨와 정·관계 간 커넥션과 관련된 현대차 최고위층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압박용'이라는 시각이다. 채 수사기획관이 현대차그룹 일가에 대한 출국금지와 관련해서도 "아직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는 모르겠다"며 출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해석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