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당시 기업 인수ㆍ합병(M&A)을 도와주고 거액의 사례비를 받은 '기업사냥' 브로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됐다. 대검중수부는 컨설팅업체 전 대표 김재록씨(49)에 대해 23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2001년께 자금난에 허덕이던 부천 지역 쇼핑몰업체 등으로부터 금융기관 대출 청탁 명목 등으로 10억원대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김씨는 정·관·재계에 구축해놓은 광범위한 인맥을 토대로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각종 구조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금융계 미다스의 손''인수·합병(M&A) 전문가' 등의 별명이 붙었던 인물이다. ◆고위층 로비 의혹이 수사대상 검찰은 지난 22일 체포한 김씨를 상대로 부실기업 인수·합병 및 금융기관 대출 알선 등과 관련한 여러 청탁을 받고 비리를 저지른 게 있는지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김씨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던 2000∼2001년께 한두 개 기업으로부터 정리대상으로 선정된 '알짜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경제부처 고위 관료들에게 부탁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공적자금 비리 수사과정에서 김씨의 혐의를 잡고 1년 가까이 계좌추적 등을 통한 내사를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씨는 부천지역 쇼핑몰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컨설팅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대검 관계자는 "(컨설팅)영업 전체가 변호사법상 불법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정·관·재계로 불똥 튈 가능성 검찰수사의 중추기관인 대검 중수부가 김씨를 조사하는 것은 김씨의 부탁을 받고 구조조정을 빙자해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빠진 기업을 다른 기업에 넘겨주는 등 '권력형 비리'에 관련된 인사를 철저히 밝혀내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김씨가 브로커로 활동한 때는 정부가 약 145조원의 구조조정 자금을 투입해 정리대상 기업을 국내·외에 매각했던 시기다. 당시 우량 기업들이 지나치게 싼 값에 팔려나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검찰은 김씨가 정리대상업체의 워크아웃 및 매각 등에 관여했던 전·현직 경제분야 고위 관료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전직 장관 L씨,정부 산하 기관장 O씨 등과의 관계에 수사의 초점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들 고위 관료를 포함한 정·재계 인사들이 주된 표적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청탁 등과 관련해 정·관계 인사를 소환할 계획은 아직 없지만 청탁 여부도 조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