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영업비밀을 빼돌려 회사에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힌 기술 유출범 10명 중 1명꼴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 기술유출범으로 기소돼 1심과 2심 선고가 난 54명(1심과 2심 중복) 중 85%에 달하는 46명이 무죄 또는 집행유예형 등을 선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2심 선고가 난 21명 중 1명을 제외한 20명(95.2%)은 집행유예 이하의 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2심에서 1심보다 높은 형량이 나온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1심에서 징역형과 집행유예가 난 9명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술유출 사건을 주로 맡았던 한 판사는 "영업비밀에 대한 해석이 법원과 검찰이 다를 수 있고 재판 중 당사자 간에 합의를 보는 경우가 많아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영업비밀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해 회사 기밀을 모두 들고 나간 혐의로 구속된 사람을 선고 전에 미리 풀어주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휴대폰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할 수 있는 '3.5세대 CDMA' 휴대폰의 핵심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려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모뎀칩 개발사 E사의 전 연구원 임 모씨(33)는 지난 20일 있었던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해당 기술이 해외로 유출됐더라면 2조3000억원의 피해가 날 뻔한 데다 E사가 개발한 모뎀칩 관련 자료 의 대부분을 가지고 나온 점에 비춰 너무 가벼운 처벌이 아니냐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이러한 일은 과거에도 많았다. 지난해 4월에는 개발비만 4000억원가량 든 6세대 LCD 관련 핵심 기술을 빼돌리다 2004년 12월 구속 기소된 차 모씨가 1심 선고가 있기 전 보석으로 풀려났다. 같은 시기 국내 한 전자회사가 개발한 CDMA 휴대폰 시험 프로그램 관련 자료를 갖고 경쟁사로 이직한 혐의로 지난해 2월 구속 기소된 김 모씨도 두 달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법원은 형사소송법상 1심 재판에서 인신 구속 시한이 6개월을 넘지 못하게 돼 있어 재판이 길어지면 법 규정대로 보석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인 액수에 이르게 되는 기술유출 사건의 특성을 도외시한 채 피해액의 2∼10배를 벌금으로 매기도록 해 결과적으로 그 누구도 벌금을 낼수 없도록 하고 있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도 문제다. 정인설·김현예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