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바뀌고 있다. 골프 파문으로 낙마한 이해찬 전 총리의 사표를 즉각 수리한 것은 물론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을 후임총리로 사실상 내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과거의 '오기'보다는 여론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 전총리의 퇴진으로 20개월 동안 유지했던 분권형 책임총리제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야당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유화 제스처도 눈길을 끌고 있다. ◆변한 인사 스타일= 지난 14일 아프리카 순방 귀국에 맞춰 이 전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자 노 대통령은 당일 이를 수용했다. "최소한 바로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던 일반 예측을 깬 것이었다. 후임 인선과정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지난주 말까지 '김병준 정책실장 유력 검토' 분위기였다. 대통령의 정책철학에 대한 이해,책임총리 시스템 유지 등 청와대가 내세운 요건에 김 실장이 가장 적합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반대가 명확히 드러나자 즉각 '5배수에서 검토 중'이라고 물러섰고,뒤이어 야권의 반발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판단되는 한명숙 의원쪽으로 기류가 급격히 바뀌었다. ◆분권형 책임총리제 바뀔 듯= 한 의원이 지명되면 책임총리가 아니라 관리형 총리가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이 전 총리가 끌어온 '분권형 책임총리'체제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의원이 이 전 총리만큼 국정 전반을 장악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도 '안전 항해','안정적 국정운영'을 강조하고 있어 외견상 책임총리제를 유지한다고 해도 청와대가 국정 각론에 개입할 가능성은 높다. 다만 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와 한·미 간 FTA 협상에 몰두하겠다고 몇 차례 밝힌 만큼 주도적으로 새로운 일을 벌여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정분리 원칙 약해질 듯= 새로운 권력구도의 모델이라며 강조해온 당·정 분리의 강도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의장 체제가 출범한 뒤 당과 청와대가 바짝 붙어있다. 이번 총리 인선과정에서도 정 의장을 독대하면서 일 처리가 빨라졌다.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관들도 여당에서 요구하는 수준대로 내준 셈이고,여야 원내대표와 회동에서는 여당에서 탈당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코드인사'에서 '실용인사'로 바뀌고,야당과는 적극적인 대화정치에 과연 나설지,양극화 외에 다른 대형 아젠다를 던지지는 않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