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부활에서 배운다] 2부 : (2) 사훈 '재미있고 엉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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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경영환경이 척박한 일본에서 호리바제작소가 세계 최고의 정밀 측정기기 메이커로 우뚝 선 것은 설립자인 호리바 마사오 명예회장이 오너십을 바탕으로 독특하게 기업을 이끌어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교토 출신으로 교토대학을 나와 전후 최초의 벤처기업을 세운 호리바 명예회장은 '괴짜 경영' '상식을 뒤집는 역발상 경영'으로 주목을 끌어왔다.
1945년 교토대학 물리학부 재학 중에 국산 첫 유리전극식 pH계량기 개발에 성공해 벤처를 설립한 호리바 명예회장은 '평범한 회사' '보통 회사원'을 철저히 거부하며 임직원들에게 창조적인 마인드를 심어줬다.
이런 취지에서 사훈도 '재미있고 엉뚱하게(おもしろ おかしく)'로 정했다.
1974년 사훈을 이렇게 정하자고 제안하자 '엉뚱하고 유치하다'며 종업원들의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하도 시끄러워 한동안 이 문제를 덮어놨다.
그러다가 1978년 창립 25주년을 계기로 사장직에서 물러날 때 퇴임 기념으로 '재미있고 엉뚱하게'를 사훈으로 정해줄 것을 요청해 결국 자신의 인생관을 사훈으로 삼게 됐다.
그래서인지 그는 강연 때마다 "삐져나오는 못은 더 삐져 나오게 하라"고 강조한다.
일본에서 벤처가 자라나지 못하는 이유로 경제계의 보수적 풍토를 꼽는다.
"튀면 두들겨 맞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국민성과도 무관치 않다.
하지만 호리바제작소처럼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이 큰 벤처 기업에서는 이런 풍토를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자살행위와 마찬가지라는 게 호리바 명예회장의 신념이다.
호리바제작소에서는 상사의 말에 순응하는 직원보다 '모난 돌'이 될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난 돌'은 회사 내에 적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가능성이 낮은 일에 도전하고 승부 근성이 강한 편이다.
같은 맥락에서 "남의 말을 듣지 말 것"을 권한다.
특히 벤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게 남의 말은 죽음에 이르는 독약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교토 기업인들의 두드러진 특징도 웬만해서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신이 내려야 할 결정을 남에게 결코 맡기지 않는 완고함이 있다.
자신이 갈 길을 정하면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성향이 있다.
이 밖에 호리바 명예회장은 '동료의식이 강하고 잔업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 '애사정신에 매달리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으로 보고 탐탁지 않게 여긴다.
설립자는 은퇴했지만 호리바제작소에는 '튀어야 산다'는 인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양준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junho@s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