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권력기관'으로 군림하면서 안팎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옛 그룹 구조본의 경영진단팀, 재무팀과 법무실이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이들 기구는 뛰어난 맨파워와 총수의 전폭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단순한 기업 내 부서 이상의 힘을 발휘해 왔으나 그만큼 재계와 사회 일각의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 그러나 지난달 4일 5개월간의 해외체류 끝에 귀국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비대해 느슨해진' 삼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3일 뒤 이학수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일련의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국민여론 수렴대책을 발표한 후 이들 3개 기구는 최우선 개혁목표가 됐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은 그룹 법무실. '2.7 국민여론 수렴대책'의 하나로 전략기획실로 명칭이 바뀐 옛 구조본에서 떨어져 나와 사장단협회회(수요회) 산하로 이관돼 사장단의 법률자문에 주력하는 쪽으로 역할이 축소됐고 10명이 넘던 변호사들은 대부분 계열사로 소속이 바뀌었다. 22일 삼성 소속 변호사들이 '법률봉사단'을 구성해 서민을 위한 법률구조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와 같은 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 법률봉사단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등 생활이 어렵고 법을 몰라 스스로 법적 수단을 강구할 수 없는 시민들을 위해 모든 법률분야의 상담과 형사사건 변론 등 법률사무에 관한 각종 지원을 무상으로 제공하게 된다. 2002년 구조본 법무팀으로 출발해 2004년 7월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지낸 이종왕 사장의 영입과 함께 '실(室)' 조직으로 승격된 이래 부장검사급을 포함한 엘리트급 법조인들을 영입, 웬만한 로펌 이상의 규모를 갖추고 정부와 '일전'을 불사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이와 같은 법무실의 변신은 '환골탈태'라고 부를 만하다. 법무실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배정' 의혹에 대한 법률적 대응,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증여세 부과 취소소송, 공정거래법 일부 조항에 대한 위헌소송 등 대정부 소송을 주도하면서 '정부권력에 맞서는 삼성'이라는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면모를 일신한 삼성의 조직은 법무실에 그치지 않는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돌았던 경영진단팀 역시 '권력의 원천'이었던 내부 비리 적발 기능을 계열사에 넘겨주고 이제는 경영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점검하고 문제해결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창설한 그룹 비서실에서 '암행어사' 역할을 해왔던 감사팀의 후신인 경영진단팀은 삼성 구조본 개편 방침에 따라 재무팀과 통합해 이름도 전략지원팀으로 변경되면서 그룹내 '사정기관'이라기보다는 '컨설팅 기관'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경영진단팀과 몸을 합친 옛 재무팀은 계열사 자금 흐름의 진단, 신규사업 타당성 평가 및 자금조달 방안 마련 등을 통해 총수가 계열사를 장악하는데 핵심 역할을 해 왔다. 재계 일각에서는 옛 재무팀이 총수의 재산 관리나 경영권 승계 작업까지 관여하면서 다른 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총수의 신임과 그룹내 영향력을 확보해 왔다는 분석도 나왔었다. 그러나 옛 재무팀 역시 그룹의 사전승인이 필요한 투자사업의 규모가 대폭 확대되는 등 계열사의 자율경영이 강화되면서 예전과 같은 '막강 권력'을 휘두르기는 어렵게 됐다. 삼성 관계자는 "각 계열사가 독자적인 책임 아래 자율경영을 하고 그룹 전략기획실은 이를 지원하거나 그룹 차원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사업 등에 관해 조정업무만 담당한다는 방침이며 이 같은 원칙에 따라 각 기구의 역할도 재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