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야당을 향해 이례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노 대통령은 17일 참여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여야 5당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간담회를 가졌다. 노 대통령이 야당 원내대표들과 만나기로 결심한 직접적인 계기는 국회에 계류 중인 사법개혁안과 국방개혁안 때문으로 보인다. 두 주요 안건의 조속한 처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분권형 총리로서 정책 업무를 관장했던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가 사퇴함으로써 노 대통령 자신이 직접 야당의 협조를 구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만남이 단지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 협조를 위한 자리의 성격으로만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이 전 총리의 급작스런 낙마로 인해 `분권형 구정운영' 기조가 다소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야당과의 대화 자리가 갖는 의미는 의외로 클 수도 있다. 향후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로 읽혀 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한 의원은 "임기를 2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노 대통령으로서는 앞으로 야당의 협조가 절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선거 이후 정국상황이 간단치 않게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향후 야당 지도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일이 잦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만남에서 노 대통령의 개혁법안 처리 요구에 대해 야당 원내대표들은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노 대통령 역시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대표의 천정배 법무장관 경질이나 사학법 재개정 요구,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원내대표의 탈당 주문 등에 대해 경청하는 자세 이상 이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탈당 요구에 대해서는 "나 때문에 당에서 피해를 입을 때는 당적을 정리하고 싶더라"라면서도 "야당이 정말 당적 버렸다고 생각하겠느냐. 위선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또 탕평인사 건의에 대해서는 "정부내 이견이 조금만 있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오히려 이해를 당부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평행선을 달린 듯한 회동이었을 수 있지만 회동을 마친 후 청와대나 여야 원내대표단의 표정은 어둡지 않아 보였다. 천영세 민노당 원내대표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떤 의제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거나 적극적으로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며 "각을 세워서 추궁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고 했다. 그는 "오늘 모임은 여야가 대화로 뭔가 해봤으면 좋겠다는 의사의 표시였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