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을 나이 든 사람들이 사고,반대로 중년층을 위한 상품을 젊은이가 구입하는 등 나이를 뛰어넘는 '에이지리스(ageless)'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태평양이 2004년 발매한 설화수 섬리안 크림이 대표적인 예다.


백화점에서 비교적 고가(11만원대)에 판매되는 이 제품은 40대 이상 여성을 타깃으로 눈가의 주름을 개선해주는 효과를 집중 홍보했지만 의외로 20~30대 이용자가 4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층과 중년층의 '쌍끌이' 소비로 태평양은 2005년 섬리안 하나만으로 3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젊은 소비자들이 설화수 구입 대열에 합류하자 태평양은 최근 이 제품을 백화점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 설화수 구입 사이트 회원의 65%는 20대와 30대가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화장품 시장에 '에이지리스' 바람이 불면서 10대와 20대 초반을 주 고객으로 하는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들도 '링클 리페어 에센스(미샤)''링클 스탑(더페이스샵)' 등 주름 개선 기능성 화장품을 내놓고 있다.


반대로 젊은층을 타킷으로 내놓은 제품을 4060세대가 사들이는 경우도 많다.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 레인콤은 MP3플레이어 '아이리버 U10'이 중장년층으로부터도 인기를 누림에 따라 짭짤한 수익을 얻고 있다.


원래 이 제품은 젊은 디카족을 겨냥해 보통의 MP3플레이어보다 액정 화면의 크기를 두 배로 키워 사진이나 동영상을 저장해 볼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노래 검색이 쉽도록 글자 크기도 같은 비율로 키운 것이 특징.


용산 전자상가의 휴대용 전자기기 판매상인 최훈씨(36)는 "화면과 글자가 큼지막하고 조작이 쉬워 중년층 소비자에게 인기"라며 "요즘 중년층의 MP3플레이어 구입의 80%는 아이리버 U10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백화점 패션매장의 매출 추이에서도 이 같은 경향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10대와 20대 젊은 여성들이 이용해 오던 백화점 영캐주얼 매장의 주 고객은 30~40대로 바뀐 지 오래다.


작년 한 해 롯데백화점이 본점 부산점 등 전국 12개 대표 점포 영캐주얼 매장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30~40대 비중이 평균 61.7%였다.


영캐주얼 매장에 나이 든 고객들이 섞여들면서 전체 매출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달 겨울 마감 세일 기간 중 다른 매장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신장률은 한 자릿수였지만 영캐주얼 매장 매출은 20% 이상 증가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영캐주얼 매장을 찾는 30~40대 여성 고객이 급증한 것은 나이는 들었어도 신세대처럼 젊고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에이지리스' 소비 경향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본의 경우 시세이도가 피부 노화 방지용으로 내놓은 '리바이탈'은 50~60대가 주 타깃이지만 최근 20대 여성 구입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완구업체 '다카라토미'가 내놓은 '뉴멜' 인형은 고령층에 인기다.


그러나 에이지리스 소비 문화의 축이 일본은 고도성장기 소비문화의 세례를 받은 단카이(團塊·베이비 붐) 세대인 반면,한국은 2635세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실버세대의 소비문화를 젊은이들이 추종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반면,한국에선 젊은층의 소비 성향을 나이 든 이들이 좇는 경우가 많다는 것.


김익태 제일기획 AP(account planning)그룹장은 "한국에서 2635세대가 소비 트렌드를 이끄는 것은 이들이 일본과 달리 소비 문화를 본격 향유하기 시작한 1세대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최근에는 구매력 있는 중년층의 '웰빙' 라이프 스타일이 2635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