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의 효력을 둘러싼 다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유언의 요건이 워낙 까다로워 법에서 정한 유언 방식에 따르지 않을 경우 유언자의 의사와 일치하더라도 효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민법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다섯 가지 방식에 의한 유언만 인정하고 있다. 가장 흔한 자필증서 유언의 경우 전문을 직접 써야 한다. 작성한 날짜와 이름,주소를 쓴 뒤 마지막으로 꼭 서명날인을 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무효가 된다. 실제로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 김운초(전 한국사회계발연구원장)의 '연세대 120억원 기부 불발 사건'만 봐도 유언의 요건이 얼마나 엄격한지 알 수 있다. 자필로 작성한 유언장이었지만 '서명 날인'이 없었던 탓에 기부를 받기로 한 연세대 측은 패소했다.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거나 복사본 유언장도 무효며,연월만 있고 일자가 없어 무효가 된 판례도 있다. 특히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경우 법원은 유언자의 '명백한 의사표시'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앞서 서울지법 민사합의16부는 오빠가 임의 작성한 유언장을 혼수상태의 아버지로부터 승낙받은 것은 무효라며 여동생 3명이 낸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에서 "수술 후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여 유언장을 승낙한 점은 인정되지만 유언은 유언자가 공증인의 면전에서 구두로 직접 진술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시했다. 또 병상에 누워 있던 모친이 숨을 거두기 이틀 전에 했다는 유언을 근거로 장남이 유산을 독차지하려고 한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사망 전 눈 인사만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유언이 이뤄져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유산을 일가족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유언에서 '증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박 모씨는 전 재산인 3000만원을 어린이단체에 기증하겠다는 유언을 녹음 테이프에 남겼으나 '증인'이 배석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해관계자는 증인 자격이 없다. 최 모씨는 부친이 부동산과 택시회사 지분 등 재산을 후처의 자녀 3명에게 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쓰고 작고하자 지난해 "유언장 작성에 참여한 증인에 피고들의 외삼촌이 끼어 있다"고 주장,승소했다. 최근에는 탤런트 임현식씨,가수 김국환씨 등이 인터넷상에서 동영상이나 음성 등으로 자신의 사후 메시지를 남기면서 인터넷 유언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 역시 '자필'과 '서명' 등 요건에 걸려 법적 효력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법무법인 한울의 김응우 변호사는 "민법이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언의 요건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지켜서 유언을 해야 차후 분쟁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