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이 일본은행 총재 "중앙은행 역할은 골키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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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후쿠이 도시히코 총재가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주재하던 9일 오전. 돈을 충분히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양적(量的) 금융완화정책 해제 여부가 5년 만에 의제에 올랐다. 시장에선 연기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전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경기 불안을 우려,미뤄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후 3시쯤 시장에 흘러나온 소식은 '후쿠이가 했다'는 것. 곧바로 닛케이평균주가가 강세로 돌아섰다. 회의 결과를 발표하러 기자회견에 나온 후쿠이를 가리켜 언론은 '일본의 앨런 그린스펀(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라고 불렀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회복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미국의 시사주간 뉴스위크도 최근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전 일본은행 총재들과 다르게 후쿠이에 대해 신임을 표시하고 있다"며 그를 '일본의 그린스펀'이라고 평가했다.
1935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1958년 도쿄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곧바로 일본은행에 들어가 1998년 부총재로 승진할 때까지 40년간 한 우물을 팠다.
풍부한 경험과 동료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아 누구나 총재 자리에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일본은행의 왕자로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그해 정치인 및 재무상과 독립성 문제로 다투다 밀려나고 말았다. 그를 따르던 직원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낙마의 자책감을 벗어던지고 민간 싱크탱크로 옮겼다. 부총재까지 오르는 동안 쌓았던 정치권 및 재계와의 활발한 교류도 지속했다. 결국 다시 기회가 왔다. 2003년 3월 영예의 총재로 임명됐다.
스스로 그린스펀 전 의장의 정책 스타일을 표방,유연하게 시장을 끌어왔다. 전임 총재인 하야미 마사루가 정책 문제를 놓고 정부와 잦은 충돌을 빚었던 것과 달리 총재 취임 후 정부와의 관계도 복원시켰다.
이번 금융완화정책 해제 결정을 발표하면서도 정부에 대한 반대 의도는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말이 빠르고 승부욕도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휴대폰 벨소리를 프로야구팀 한신 타이거스의 응원가로 정할 정도로 열렬한 야구팬이다.
많은 사람들은 후쿠이 총재가 일본 경제 회복의 수훈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본인은 일본은행의 역할을 '축구경기의 골키퍼'에 자주 비유했다.
일본 언론은 '후쿠이 총재가 할 일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 연준리가 이달 28일 회의에서 지속적인 금리 인상 억제를 시사하고 일본은행이 그 후에야 양적완화정책을 해제할 경우 엔화가 급등할 우려가 있어 앞당겨 해제 결정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제 금융시장의 반응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9일 일본의 향후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가 국제 자금 흐름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 후쿠이 총재 약력 ]
△1935년 일본 오사카 출생
△도쿄대 법학과 졸업
△1958년 일본은행 입행
△1998년 일본은행 부총재에서 퇴직
△2003년 3월 일본은행 총재 취임
장경영·안정락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