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의 꿈을 품고 입사했지만 꼬박 1년을 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다.


'정말 약속대로 다시 불러줄까'라는 불안감에 속앓이도 심했다.


복직 후 7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회사의 '대들보'가 됐다.


올해까지 최근 2년간 대부분 과장(일반직) 부사무장(승무직) 부기장(운항직) 기술감독(정비직) 등으로 승진해 근무 중인 아시아나항공 직원 630명의 얘기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입사한 이들은 이듬해 4월부터 짧게는 7개월 길게는 1년을 쉬어야 했다.


무급 휴직이었다.


대부분 미혼으로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내에서 '98세대'로 불리는 이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두 장면이 있다.


1998년 3월 말 서울 마곡동 아시아나항공 옛 교육훈련원에서 열린 휴직 설명회가 첫 번째다.


침통한 표정으로 모여든 사원들 앞에서 최영한 부사장(현 아시아나공항서비스 사장)은 "여러분에게 정말 미안하다.


꼭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급 휴직을 통보했다.


이때부터 기약없는 방황이 시작됐다.


해외에 나가 허드렛일로 학비를 벌어가며 어학연수를 한 사람도 있고 세탁소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달랜 사람도 많았다.


호주에서 관광비자를 연장해가며 6개월을 지냈던 김모 인천화물지점 과장은 "청소 식당일 농장일 등을 하면서 복직의 날만 기다렸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인생에서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일 서울여객지점 과장은 휴직 기간 중 식당(고깃집)을 차려 직접 사업에 뛰어든 케이스.복직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었던 탓이다.


그는 "식당이 예상 밖으로 잘 됐지만 복직하라는 연락을 받고 바로 가게를 넘기고 달려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잊을 수 없는 두 번째 장면은 1998년 11월1일이다.


실직자 아닌 실직자로 지내던 630명 가운데 100여명이 1차로 복직한 날이었다.


박삼구 아시아나항공 사장(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사장실 옆 회의실로 복직자들을 모두 불러 일일이 손을 잡고 "고생했다"는 말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고 한다.


요즘도 기회 있을 때마다 박 회장은 "직원들의 고통 분담으로 위기를 훌륭히 극복했다"고 말한다.


이어 이듬해 3월 나머지 530여명도 모두 복직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97년 입사자들은 1년을 쉬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단련돼서인지 몰라도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무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이들이 회사에 든든한 자산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