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와 인근 지역을 연결하는 20번 국도 건설사업은 여러 개의 터널을 관통하는 공사비 2조2500억원의 대규모 공사다. 1993년 '스위스 교통클럽'이라는 환경단체가 이 사업에 대해 환경오염 저감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며 단체항소권을 사용했다. 이후 연방법원은 이 단체의 요구가 도로 건설과 무관하다고 판결했지만 사업은 3년 이상 지연됐고 공사비도 370억∼750억원이나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천성산 터널 사업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사례가 스위스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기존 환경 관련 법률에 명시된 '항소권'을 남용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스위스 의회는 항소권 행사를 제한하는 법률(호프만 법안)을 도입,내년부터 시행키로 해 우리나라도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지속가능경영원은 7일 발표한 '스위스 호프만 법안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천성산 터널이나 새만금 사업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도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누구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어 국가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호프만 법안 같은 법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호프만 법안은 환경단체가 항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10년 이상 항소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활동을 해야 하며 △항소권은 해당 단체의 장으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법안은 또 연방법 및 주법에 따른 이의제기 절차를 따르지 않은 단체는 항소권을 박탈하도록 규정했다. 스위스 의회가 이같이 항소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도입하는 것은 환경단체들의 항소권 남용으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개발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된 사례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90년대 이후에만 '20번국도 건설사업 지연'을 포함해 △3M 연구단지 조성 사업 무산(90년대 초반) △취리히 유로게이트(Eurogate) 조성 사업 무산(2001년)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 대회를 위한 대형 경기장 건설 무산(2004년) 등의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보고서는 "호프만 법안이 이 같은 불필요한 항소로 인한 개발계획이나 사업의 지연을 막아 사회·경제적 손실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