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때 쫓긴 닭,장닭되어도 쫓긴다'는 말이 있다.


어린시절 주눅이 들었던 상대에게는 커서도 좀체 기를 펴지 못한다는 뜻이다.


바둑계에 이 말을 떠올리게 하는 두 기사가 있다.


바로 한국 바둑랭킹 2,3위에 올라있는 최철한(21) 9단과 이세돌(23) 9단이다.


바둑랭킹으로만 놓고 본다면 최 9단이 조금이라도 상대전적에서 앞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독사'라는 닉네임이 붙을 만큼 전투적이고 치열한 기풍의 최 9단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이 9단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한다.


지난달 22일 벌어진 제7회 맥심커피배 결승전에서도 그랬다.


이날 대국에서 흑을 쥔 최 9단은 거친 대마싸움을 벌이며 이 9단과 맞섰지만 결국 208수 만에 항서를 쓰고 말았다.


이날 패배로 두 사람의 상대전적은 4승8패(최 9단 기준)로 다시 벌어졌다.


'부동의 1인자' 이창호 9단과 가진 타이틀매치에서 무려 3번(국수전 2차례,기성전 1차례)이나 승점을 챙겨 '이창호 천적'으로까지 불리는 최 9단으로선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2살 터울의 두 사람은 똑같이 권갑용도장 출신이다.


누가 먼저 입문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 9단이 도장에 왔을 때 이 9단은 이미 이창호를 꺾을 유망주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반면 최 9단은 단수부터 배우며 도장에서 기초를 닦아 나갔다.


어린 최철한에게 이세돌은 감히 넘볼 수 없는 '태산준령'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최 9단은 이 9단과 도장에서 연습바둑을 둘 때도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승부사로서 서로 껄끄러울 법도 하지만 예상외로(?) 두 사람은 무척 친하다.


입단 전부터 한솥밥을 먹으며 자란 데다 성격이 맞는지 둘은 잘 붙어 다닌다.


둘이서만 카드를 치기도 한다.


바둑판을 벗어나면 다소 내성적인 최 9단에게 외향적이고 거침 없는 성격의 이 9단이 잘 어울린다는 것.언젠가 최 9단은 "세돌이형과 바둑판에 마주 앉으면 어릴 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다른 기사들과의 대국 때와 달리 승부욕이 잘 생기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바둑계에서는 이런 '친함'이 승부에 있어선 독이 되면 됐지 플러스가 될 것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3월 중 있을 맥심커피배 결승 2,3국에서 최 9단이 이 9단을 맞아 어떤 바둑을 보여줄지 기다려지는 이유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