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제조업체 로만손의 북한 개성 공장 기술고문 김광성씨(49). 그는 매주 월요일에 남북한 CIQ(세관·출입국관리·검역소)를 거쳐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주말에 서울로 돌아오는 생활을 5개월째 하고 있다. 개성 공장에서 일하는 북쪽 근로자 650여명과 남쪽 근로자 80여명의 교육을 위해서다. 지난달 28일 개성공단을 방문,김 고문으로부터 북한 근로자들의 실태에 대해 들어봤다.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가장 골치아프죠." 김 고문은 "북한 근로자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김 고문에 따르면 북쪽 근로자들은 인센티브에 대한 개념이 없다. 인센티브 얘기를 꺼냈더니 "고문 선생,그게 몹네까?"라고 되묻더라는 것. 월급도 회사에서 직접 주는 게 아니라 당에서 배급한다. 로만손은 북쪽 근로자에게 1인당 미화 57.5달러(기본급 50달러+각종 사회보험비용 7.5달러)를 지불한다. 하지만 근로자가 직접 받는 것이 아니고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일괄 수령해 각 근로자들에게 배당한다. 회사가 인사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인력이 필요한 기업이 관리위원회에 '노력 알선' 신청을 하면 관리위원회는 '노력 알선 기관'과 협의한 후 필요한 만큼의 인력을 구해준다. 해고 역시 관리위원회가 알아서 한다. "일 안 하는 사람이 가끔 있잖아요. 하지만 해고를 마음대로 못하죠." 김 고문은 "인사권이 사실상 '직장장'이나 '반장'들에게 있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직장장'은 근로자 대표를 말한다. '직장장' 밑에는 '총무'가 있고 그 밑에 각 조의 '조장' 및 '반장'이 있다. 북한 근로자들이 가장 신경쓰는 존재는 회사 사장도 인사팀장도 아닌 이들이다. "이쪽 라인에 일손이 모자라고 저쪽은 놀고 있어 '거기 있지 말고 이쪽에 와서 일하라'고 해도 지시가 먹히지 않아요. '반장한테 이야기 하라'는 거죠.반장이 남쪽 관리자들에 대해 호의적이면 괜찮은데 '그쪽 바쁜 거와 우리 조가 무슨 상관입네까' 하면 그만이에요." 한 번은 한 여자 근로자가 몸이 아프다며 결근을 했다. 이 직원은 그러나 이틀 사흘이 되어도 업무에 복귀하지 않았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반장에게 구두로만 보고 받았는데 결국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퇴직 처리했다. "아마 그 직원이 남쪽 직원과 너무 가까이 지낸다 싶었나 봐요. 남쪽 근로자와 언니 동생 하던 사이였거든요. 그렇게 슬그머니 근로자를 작업에서 빼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김 고문은 하지만 북한 근로자들도 차츰 변화하고 있고 어쩌면 중국보다 더 빠른 변화를 보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처음 들어간 업체들이 중국 근로자들 게으르다고 얼마나 불평했어요? 그에 비하면 같은 말 쓰고 같은 민족성을 가진 북한 근로자들이 중국보다 더 빨리 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김 고문에 따르면 북한 근로자들은 자기들끼리 회의를 자주 한다. 이른바 '총화시간'은 일반적으로 오후 3시~3시30분,6시~6시30분 하루 두 차례 열린다. 저녁 8시까지 초과근무를 하는 날이면 8시~8시30분에 또 한 번 회의를 한다. 총화시간에는 근무시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보고된다. 남한에서 개성공장 시찰단이 오는 날이면 남쪽 사람들이 어디를 둘러보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등을 빠짐없이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쪽 근로자들과는 사적 대화가 엄격히 금지돼 김 고문조차 총화시간에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수첩에 뭔가를 빼곡히 적어놓고 시간 날 때 들여다 보는데,김 고문이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금세 수첩을 덮는다는 것. "연초에 한 직원이 일하다 말고 수첩을 보고 있길래,무슨 내용인가 호기심에 어깨 너머로 슬쩍 봤는데 얼른 수첩을 덮어버리더군요." 그는 "아마 당에서 내려온 연두교시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북한 근로자들은 휴식 시간도 자주 갖는다. 담배도 많이 피우고 화장실도 자주 간다. 하지만 휴식할 때도 북쪽 근로자들은 북쪽 근로자들끼리,남쪽 근로자는 남쪽 근로자끼리 지내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할 시간은 거의 없다. 개성공단에서는 식사 시간에도 남북 양측 근로자들이 나뉘어 밥을 먹는다. 각자의 전용 식당이 따로 있다. 남쪽 근로자들에게는 반찬과 밥 국 모두를 포함한 세 끼 식사를 제공하지만 북측 근로자들에게는 국만 제공한다. 밥과 반찬은 각자 집에서 싸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남쪽 근로자 식단은 남한 식당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기자가 방문한 날 점심에는 자장밥과 솎음배추국,떡잡채와 만두튀김,포기김치가 나왔다. 북한 근로자들에게는 요일별로 돼지고기 김치찌개,계란미역국,동태매운탕,된장국,닭고기국 등이 제공된다. 토요일 특근에는 만두국과 칼국수 수제비 라면 등이 나온다. 주중 야근 때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간식으로 초코파이가 나온다. 하지만 대개는 먹지 않고 아껴뒀다가 집으로 가져간다. "야근할 때 초코파이를 주는데,쓰레기가 안 나와요. 집으로 가져가는 거죠." 김 고문은 "집으로 가져간 초코파이를 쌀이나 다른 것들과 바꿔 먹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초코파이를 두 개씩 배당한다. 하나는 먹고 하나는 집에 가져가라고. 김현지 기자 n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