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부활에서 배운다] (9) 환골탈태한 금융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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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전 10시 도쿄 신주쿠 히가시구치에 있는 스미토모미쓰이은행 지점.토요일인데도 고객들로 북적거렸다. 통장이나 현금이 오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창구 옆에 붙여놓은 안내 표지판을 보고서야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쉬는 날에는 은행에 간다.
주택담보대출과 자산운용 상담은 토요일과 국가공휴일에도 받습니다.'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대출과 자산운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휴일에도 상담해주는 '컨설팅 프라자'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일보다 한시간 더 영업(7시간)해야 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신주쿠역 반대편 출구인 니시구치에 있는 미쓰비시UFJ신탁은행에는 주택담보대출 상품과 부동산 추천 매물들이 전면 통유리를 도배하고 있다.
'연 0.78%'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출금리가 시선을 끌었다.
3위 은행인 스미토모미쓰이은행은 중견·중소기업 대출에도 적극적이다.
기업의 실적과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대출 가능 여부를 신청 즉시 결정해준다. 무담보 대출이지만 신용 파악 시스템이 정교해 부실 대출 우려는 없다고 은행측은 설명했다.
일본 은행들이 부실의 멍에에서 벗어나 공격적 영업에 나서고 있다.
'저(低) 마진 노(no) 리스크'를 특징으로 하는 국채 투자를 선호하던 예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들떠보지 않던 소기업,한국계 기업에도 '대출 세일'에 나서고 있다.
연 2.5%로 돈을 쓰고 있는 기업이라면 1.5%까지 파격적으로 깎아주겠다는 식이다."(국내 은행 도쿄지점 관계자) 조그만 자회사를 차려놓고 빠찡꼬 회사에 대부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초대형화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 1월 통합한 미쓰비시UFJ금융그룹(MUFG)은 자산(1조7400억달러) 기준 세계 1위,시가총액(1360억달러) 기준 세계 6위로 부상했다.
2,3위인 미즈호FG와 스미토모미쓰이FG(다이와증권과 통합 예정)도 은행 외에 증권 신탁 등 다양한 자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일본의 금융산업은 이렇듯 완연한 봄을 맞이했다.
한때 9%에 육박했던 부실 채권 비율은 2%로 떨어졌다.
3대 은행그룹 모두 2005회계연도(2005년 4월~2006년 3월)에 흑자로 전환될 게 확실하다.
노무라 다이와 등 3대 증권사의 작년 1~3분기(2005년 4~12월)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00~150% 증가했다.
모치즈키 히토시 일본경제연구센터 주임연구원은 "금융 불안은 없다.
공적자금만 갚으면 재정적 의미의 구조조정은 모두 끝난다"고 말했다.
일본의 금융 회생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추진력이 밑거름이 됐다. 모치즈키 주임연구원은 "1998,99년에 공적자금 10조엔이 대부분 은행에 투입됐다"며 "이때부터 국민세금이 들어간 은행을 엄격하게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3년 고이즈미 정부가 리소나은행의 부실이 표면화되자 2조엔을 일거에 쏟아붓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이것이 기폭제가 됐고 주식시장도 힘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민간의 노력 또한 적지 않았다.
츠루미 세이이치 일본은행(BOJ) 참사역(부국장)은 "은행들이 대출 기업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재생시키느냐,손실로 처리하느냐는 판단을 예전보다 신속하게 해 금융 개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토지 담보물을 매각해서 채권을 회수하는 예전 방식에서 탈피,부실기업의 구조조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부실여신 정리에 적극 나선 것도 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금융산업은 이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구로야나기 노부오 MUFG 사장은 "MUFG가 수익성 측면에서 세계 톱5에 진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일본 은행들이 소홀히 했던 소매금융 확대에 역량을 집중,수익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글로벌화를 가속화하는 것도 재도약을 위한 전략이다.
MUFG와 미즈호FG는 올해 안에 미국에 금융 지주회사를 설립해 주식 인수 등 수익성 높은 투자은행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고급 인력을 확보하고 금융 노하우를 빨리 습득하기 위해 미국 증권회사를 인수,증권업무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도쿄=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