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롄제(李漣杰)는 '소림사'(1979) '황비홍'(1991) 등으로 아시아 최고의 액션스타로 떠올랐지만 할리우드에서는 B급배우로 대접을 받았다.


그가 출연한 '키스 오브 드래곤' '더원'(2001) '더독'(2005) 등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제작된 신작영화 '무인 곽원갑'(감독 우인태)에서 그는 건재를 과시한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은 청나라 말기 정무문을 창시한 실존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액션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곽원갑이 무도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겪는 정신적 방황과 좌절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이로써 이 영화는 현란한 동작을 포착하는데 급급해 왔던 일반 중국 액션물과 달리 뛰어난 인간 드라마로 거듭났다.


이야기는 곽원갑이 일종의 '무술엔터테이너'에서 진정한 무도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맞춰져 있다. 무술엔터테이너란 무술실력은 뛰어나지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다. 그는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지만 그들은 오합지졸이다. 또한 그의 좁은 도량은 친구의 진실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곽원갑이 자신에게 패배할 것임을 암시한다.


도입부의 청나라에 침투한 서구열강의 거한들과 맞붙는 곽원갑의 표정에서 어떤 굳은 결의나 긴장감이 읽혀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승자의 관대함과 깨달은 자의 그윽한 평정심이 엿보인다. 이어지는 플래시백(회상) 장면들은 그것이 죽음과도 같은 정신적 고통을 이겨낸 결과임을 보여준다.


곽원갑의 수행과 방황은 오로지 정신수양에만 맞춰져 있다. 무술훈련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신수양도 산속에서 참선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촌에서 더불어 사는 지혜를 얻는 방식이다. 농촌생활과 모심기 장면은 경쟁보다는 협력,정복보다는 공존의 메시지를 전한다. 액션영화에 들어 있는 이 같은 에피소드는 대단히 신선하다.


액션장면도 볼 만하다. 초고층 구조물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나 칼과 창,삼절곤,맨몸액션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리롄제는 유려하면서도 힘찬 특유의 액션이 결코 녹슬지 않았음을 과시한다. 그의 걸출한 무술실력 덕분에 짧은 쇼트로 연결시키지 않고 롱테이크(길게 찍기)로 사실감을 높인 것도 눈에 띈다. 9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