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함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김춘수 '강우(降雨)' 부분




먼저 떠난 아내를 못잊어 하는 노시인의 애타는 마음이 절절하다.


왜 안그렇겠는가.


굴곡 많은 세월을 평생 반려(伴侶)하며,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힘든 일을 나누던 사람이 갑자기 떠난 후의 공허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그것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닐 것이다.


아내에 대한 들쭉날쭉한 감정과 크고 작은 실망,기억도 할 수 없는 무수한 사연이 쌓이고 쌓여 부부의 내력이 되었을 것이니.말년에 애타는 사부곡(思婦曲)을 끝없이 읊던 시인은 이제 저세상에서 다시 아내를 만나 편안해 하고 있을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