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부활에서 배운다] (3) 대학은 기술공급 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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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최고 명문 도쿄대.일본의 엘리트들을 무수히 배출해 콧대 높기로 유명한 도쿄대가 1877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미국의 경영컨설팅 회사인 매킨지에서 컨설팅을 받았다.
당시 일본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도쿄대가 외부에 경영자문을 구했다는 것 자체가 화제였다.
컨설팅 결과는 냉정했다.
'교직원들이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행정업무 중 30%는 쓸데 없는 일이니 아예 없애라.' 고미야마 히로시 총장은 임기가 끝나는 2009년 3월까지 매킨지의 조언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내친김에 7520명인 교직원 수도 매년 1%씩 줄여 나가기로 했다.
도쿄대가 이처럼 변신을 꾀하는 것은 국립대학 법인화의 영향이 크다.
일본 정부는 대학개혁 차원에서 2004년 4월 전국 89개의 모든 국립대학을 동시에 법인화했다.
법인화는 곧 대학의 경쟁을 의미한다.
법인화된 국립대학들은 외부기관의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정부에서 예산을 차등 지원받는다.
적당히 예산을 배분받았던 국립대학들이 경쟁을 통해 실적을 낸 만큼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고이즈미 내각이 '모든 국립대학이 함께 살자'는 정책기조를 버리고 경쟁을 유도해 우수 대학만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선택한 결과다.
일본 정부가 국립대학을 법인화한 목적은 분명하다.
"대학 간 경쟁적 환경을 조성해 활력과 개성이 넘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론 대학이 길러낸 인력과 개발한 기술을 민간기업에 유용하게 제공하는 게 목표다."(가와무라 마사유키 문부과학성 과장)
법인화의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학들이 민간 기업의 경영방식을 적극 도입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87개 국립대(법인화 이후 2개 국립대가 통·폐합돼 숫자 감소) 법인 중 40%가 기업인을 사외이사로 임용했다.
도쿄대만 해도 7명의 이사 중 2명이 사외이사이고,그 중 한 명은 미쓰비시 상사 임원 출신이다.
도호쿠대는 사립명문인 게이오대 총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고,와카야마대는 입시학원과 사립대에서 30년 가까이 입시를 담당해온 전문가를 총장 보좌역으로 특채하기도 했다.
주니치 하마다 도쿄대 부총장은 "민간의 경영감각을 대학경영에 접목하기 위해 기업인 출신 이사를 영입했는 데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며 "특히 학교 홍보와 재무구조 개선 등에서 큰 도움을 받는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변화는 산·학협력이 활발해진 점이다.
대학의 연구 성과물이 특허 출원돼 민간 기업에 전수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일본 대학의 특허출원 건수는 2003년 948건에서 2004년 2785건으로 1년 만에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을 특허화해 기업들에 전수한 기관도 1998년 4개 기관에서 2005년 3월 현재 39개 기관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2004년 말 현재 대학들의 기술료 수입만 연간 29억엔(약 240억원)에 이른다.
대학과 기업이 공동 연구한 실적도 2004년 1만728건으로 전년 대비 16% 증가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자체 개발한 기술로 창업한 벤처기업의 수도 2004년 말 1112개사에 달했다.
일본 정부의 '대학발(發) 벤처 1000개사 설립' 목표가 달성된 것이다.
그 중 12개사는 크게 성공해 도쿄 증시에 상장되기도 했다.
작년 말 와세다 대학에서 기술을 이전받아 형광등 재활용 벤처기업을 설립한 움벨트재팬의 고야나기 아키오 사장은 "와세다대의 벤처기업 지원기관인 인큐베이션센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형광등 재활용 벤처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며 "우리같은 벤처기업에 훌륭한 기술을 제공하는 대학이야말로 기업들의 든든한 후원자"라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