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자본시장통합법(금융투자업법) 제정에 따라 영업비밀이나 인수·합병(M&A) 진행 상황 등 기업 비밀사항과 관련된 수시공시는 일정 기간 유보할 수 있게 된다. 또 적대적 M&A 시도에 보다 빨리 대처할 수 있게 되며 유가증권신고서 허위기재에 따른 배상책임 부담도 낮아진다. 그러나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와 관련해 줄기차게 요구해온 황금주(golden share)나 독약조항(poison pill) 등 핵심 사안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보다 적극적인 M&A 대응책은 담겨 있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영업비밀 수시공시 유보 정부는 우선 기업의 비밀유지에 대한 수시공시를 유보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기업의 비밀 유지와 투자자 보호 사이의 형평성을 고려해 회사의 비밀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시공시를 유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경부 실무자는 이와 관련,"구체적 내용은 내년 초 만들 시행령에 담을 예정"이라며 "기업의 영업비밀이나 M&A 협상의 개시와 진행상황 등을 유보대상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수시공시 채널이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선물거래소로 나뉘어 있어 이중으로 보고해야 하지만 법이 시행되면 거래소로 일원화된다. 기업들의 유가증권신고서 작성 때 손해배상책임의 부담도 다소 줄어든다. 지금은 기업들이 유가증권신고서를 허위로 기재하면 중요 사항이 아니더라도 무조건 배상책임이 부과되지만 앞으로는 그 내용이 '중요한 사항'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면 배상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국민연금도 5%룰 적용 '5%룰'이란 특정기업의 주식을 5% 이상 샀을 때 5일 이내 금감위 등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정부는 이 같은 5%룰 적용 대상에 국가 지방자치단체 정부기금 증권금융회사 등은 현재 면제해 주고 있지만 앞으로는 포함시킬 방침이다. 다만 이들 기관이 5% 이상 주식을 매입하더라도 경영권에 영향을 줄 목적이 아니라면 보고 기간을 기관투자가에 준해 장기로 해 줄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5%를 취득하고 이를 금감위에 보고할 때 해당 기업에도 통보하도록 의무화된다. 기업들 입장에선 금감위 공시시스템을 상시 체크하지 않더라도 적대적 M&A 시도 등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이득을 챙길 수 없도록 돼 있는 '내부자'의 범위가 현재 해당 기업의 임직원,법인과 체결한 자 등에서 앞으론 계열회사의 임직원과 해당 기업과 계약체결을 교섭 중인 자(임직원 포함) 등으로 확대된다. 기업의 내부자가 해당 기업의 주식 등을 산 뒤 6개월 내 팔아 얻는 이익을 반환해야 하는 '단기매매차익'의 반환 대상 증권의 범위도 모든 증권으로 늘어나며 현물을 통한 선물의 시세조종 규제도 강화된다. ◆적대적 M&A 방어책 안 담아 정부는 자본시장 통합법에 △황금주(경영권 변동 등 주요 의사결정에서 '1주 다표권'을 통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주) △독약 조항(적대적 M&A 시도시 신주매입할인권 발행을 통해 기존 주주 지분율을 높이는 방안) △정관 변경을 통한 합병 및 이사해임 요건 강화 등의 내용은 담지 않는다.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 대응을 위해 이 같은 제도를 최근 도입했는데 오히려 그 가능성이 더 높은 우리는 정부 차원에서 왜 적극 검토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