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12월,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집무실. 이 회사 김현식 영업본부장(당시 영업총괄부장)이 결재서류 대신 쟁반에 드링크 한잔을 올려 놓고 최 회장을 찾았다.


새로 개발한 비타민 드링크 시제품을 최 회장에게 맛보이기 위해서였다.


김 본부장이 이 같은 '웨이터' 노릇을 한 것도 기간으로 8개월째,횟수로 50번째다.


그동안 가져온 시제품들이 '최씨 고집'으로 유명한 최 회장의 '까다로운 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김 본부장은 긴장한 채 드링크잔을 건넨 후 최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최 회장은 한모금 삼킨 뒤 "이 맛이면 되겠군"하고 짧게 한마디를 했다.


'마시는 비타민'원조 비타500이 탄생한 순간이다.


광동제약이 비타500을 앞세워 제약업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비타500은 출시 첫해인 지난 2001년 53억원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2003년 280억원,2004년 857억원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드링크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1210억원의 매출을 기록,41년간 드링크 시장 부동의 1위 제품인 동아제약 박카스(1301억원)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매출 779억원으로 업계 16위였던 광동제약은 지난해 2160억원의 매출을 올려 업계 8위로 뛰어올랐다.


영업이익도 275억원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IMF 당시 1차 부도까지 간 광동제약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최 회장은 "올해 비타500 매출이 지난해보다 30%가량 성장한 15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회사 전체로는 매출 2720억원을 달성해 올해 업계 6위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시는 비타민이 '블루오션'


광동제약이 비타500 개발에 착수한 때는 2000년 초.당시 불어닥친 비타민 열풍에 아이디어를 얻은 김 영업본부장이 "마시는 비타민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정제나 과립 형태 일색이었던 기존 비타민 제품 대신 드링크로 만들 경우 먹기도 쉽고 맛도 좋을 것으로 판단한 것.'쌍화탕'으로 쌓은 드링크 분야 기술력을 바탕으로 2개월 만에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제품은 조사 결과 소비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타민 특유의 시고 텁텁한 맛이 문제였다.


신맛과 단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텁텁하지 않은 맛을 내는 데 주력했다.


일본에서 현지의 비타민음료 제품들을 직접 가져와 맛을 참고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마침내 '신듯 시지 않고 단듯 달지 않는' 비타500의 개발에 성공하고 최 회장의 OK사인도 받았다.


회사는 처음에는 현대약품의 기능성음료 '미에로화이바'를 경쟁제품으로 삼았다.


드링크제 부동의 1위인 박카스에 대적한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비타500은 출시 다음 해인 2002년 미에로화이바를 제친데 이어 지난해 한때 월간 기준으로 박카스의 매출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마시는 비타민이라는 새로운 컨셉트에 의약품이 아닌 식품으로 개발돼 약국뿐만 아니라 편의점,슈퍼마켓 등에서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점이 성공요인으로 작용했다.


비타500은 지난해 전체 매출로는 박카스에 90억원가량 뒤졌으나 병수로는 4억8000만병(누적판매 10억5000만병)이 팔려 3억8000만병의 박카스를 앞질렀다.


◆제약업계의 '코카콜라' 꿈꾼다


비타500에도 위기는 있었다.


제품이 히트치자 '비타'라는 단어가 들어간 유사 드링크 제품이 40여개나 생겨난 것.비타500이 'One of them' 으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행운(?)이 찾아왔다.


지난 2004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청 조사 결과 비타민음료 제품 상당수에 비타민이 들어있지 않거나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반면 비타500은 오히려 기준치보다 비타민이 많이 든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역시 원조는 다르다'는 반응을 얻으며 이후 비타500의 매출은 급성장했다.


위기는 또 한번 찾아왔다.


지난해 9월 한 시민단체에서 비타500 등 비타민음료에 방부제(안식향산나트륨)가 유럽(EU) 기준의 최고 2배 이상 들어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한창 상승세를 타던 비타500 매출은 이 발표 이후 한동안 주춤거리게 됐다.


그러나 국내 안식향산나트륨 허용기준이 일본과 비슷하고 미국보다 엄격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곧 이전 수준으로 매출이 회복됐다.


최 회장은 비타500을 한때의 유행상품이 아닌 코카콜라와 같은 장수제품으로 키워낼 계획이다.


광동제약은 비타500의 품질향상을 위한 연구를 발매 이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무방부제 제품 출시도 계획하고 있다.


◆백혈병 치료제 도전으로 '음료회사'이미지 탈출


비타500의 성공은 한편으로 광동제약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제품의 매출비중이 커지면서 제약회사로서의 이미지가 희석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타500은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의 무려 56%가량을 차지했다.


1개 식품 매출이 의약품 전체 매출을 넘어선 것이다.


최 회장은 비록 지금은 광동제약이 비타500의 덕을 단단히 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치료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둬야 세계적인 제약사로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신약개발이다.


특히 백혈병 치료제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의 '글리벡'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효능은 뛰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신약이다.


최 회장은 "지금까지의 연구 데이터를 볼때 사운을 걸고 개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 단기적으로는 개량신약 개발에서 성과를 내 치료제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현재 치매치료제,뇌혈류 개선제,발모제 등 3개의 개량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올해 안에 개발이 끝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글=임도원·사진=김영우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