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의 주민번호 등을 대규모로 도용해 온라인 게임 리니지 사이트에 가입한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문제가 터진 지 이틀째인 14일 명의도용 신고 건수가 전날의 5배인 5000건을 훌쩍 넘어섰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이날 서울 삼성동 엔씨소프트 본사를 방문,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날도 리니지 서비스 사업자인 엔씨소프트에는 명의 도용에 관한 일반인의 문의가 쇄도했다. 리니지 외 다른 게임에도 일반인의 명의가 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제2,제3의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이 우려되고 있다. ◆대규모 서버 해킹 일어난 듯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규모가 큰 데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유를 단정 지을 수 없다"며 "조사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의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보안업계는 대규모 서버 해킹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트로이 목마를 이용한 개인 단위의 정보 유출은 아닌 것 같다"며 "피해 규모로 보나 명의 도용이 단기에 집중된 것으로 보아 서버 해킹 가능성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 수사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특정 사이트 서버를 해킹해 고객 정보를 대규모로 빼갔을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돈 되는 '아이템 노렸다 도용방지 솔루션 업체인 이지스는 명의 도용이 리니지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지스가 지난해 상반기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리니지 외에도 한게임 넷마블 노라조 룰루게임 등 주요 게임포털 사이트에서 수천 건의 명의도용 신고가 접수됐다. 왜 유독 게임 사이트에서 명의 도용이 집중적으로 발생할까. 보안 전문가들은 돈이 되는 게임 아이템을 해커가 노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리니지의 경우 사이버 공간에서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희귀한 아이템은 수백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사건의 배후에 중국 '작업장'이 있을 것이란 분석도 우세하다. 대량의 명의도용 계정을 만드는 것은 중국 작업장들이 값싼 인력을 대규모로 고용해 아이템을 확보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법이다. ◆정부와 업계 모두'무대책'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한국경제신문 등이 돈벌이 용으로 아이템을 이용하는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조원 규모의 전체 아이템 현금 거래 중 95%가 해킹 및 명의 도용 등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이트 해킹과 명의 도용이 대부분 중국 작업장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지난해 9000억원 이상이 중국발 아이템 해킹으로 유출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주무 부처인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는 아이템 현금 거래가 명의 도용과 각종 사이버 범죄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아이템을 돈으로 거래하는 것을 금지시켜야 하지만 산업이 위축될 수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문광부 산하 게임산업개발원 관계자 역시 "아이템 거래를 금지시키자니 게임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 같고 놔두자니 범죄가 자꾸 발생해 곤혹스럽다"고 털어놨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