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삼성의 결단' 평가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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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 경제학 >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의 8000억원 사재(私財) 헌납과 일련의 경영개혁방안에 대한 반응은 몇 가지로 엇갈려 나타난다.
삼성이 국민정서를 반영해서 외부를 탓하기 보다 스스로 변화를 택하는 대승적 결단을 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삼성이 궁지에 몰려 백기(白旗)를 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개선방안이 미진하다는 점을 들어 이번 결정을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우선 지배구조에 대한 평가를 보자.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어떤 소유지배구조가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축구에서 선수들의 능력이나 상대팀에 따라 포백 시스템 또는 스리백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지 어떤 이상적인 시스템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어떤 시스템이든 경기에 이길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시스템이듯이 경영을 잘할 수 있고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지배구조라면 그게 가장 좋은 지배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이상적인 지배구조가 있는 것처럼 우기는 건 억지에 가깝다.
삼성을 비롯한 우리의 대기업이 안고있는 문제는 한국정치와 경제,사회의 어두운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정치자금이라는 보험료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누가 부인할 수 있는가.
삼성으로서는 하고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우리의 척박한 기업풍토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온갖 힘을 쏟아 여기까지 왔는데,도와주기는커녕 왜 발목을 잡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대표기업에 대한 일반 국민의 기대수준이 높다는 점,대표기업이기에 모범을 보여야 할 책무가 크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사정을 왜 몰라주느냐고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삼성은 바른 경영을 통해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나는 길을 가면 된다.
기업실적이 모든 걸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국토의 크기나 인구가 아니라 강한 초일류기업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기량이 우수한 축구선수를 많이 보유하고 그런 선수들로 팀을 짜서 팀워크를 잘 이룰 수 있으면 축구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기업과 기업인을 부정적으로 보면서,일자리를 늘리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고 한다.
국가경제의 대표선수들인 기업의 발을 묶어놓거나 비난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소리만 요란하다.
하지만 기업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게다가 일반 국민의 반(反)기업정서는 어떤가.
시장경제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부터 기업의 목적과 존재이유에 대한 이해부족이 반기업정서를 부추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지나친 평등주의도 반기업정서 확산에 한몫을 한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반기업정서가 확산된 데에는 기업의 책임이 가장 크다.
눈을 나라밖으로 돌려 보라.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
잠시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1년 늦으면 10년 뒤처지는 스피드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경쟁에서 밀리면 탈락한다.
10년 또는 20년 후에 무얼 먹고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여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투명성 못지 않게 중요한 건 기업의 경쟁력이다.
삼성의 변신노력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와 잘 하겠다는 결단에 대한 평가에 인색할 까닭이 없다.
단순히 박수를 치자는 게 아니다.
과거 지향적 사고에서 벗어나 앞으로 어떤 경영을 하고 어떤 길을 걷느냐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에 마음껏 뛰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기업활동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