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언제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야. 올라갈 때 조심해야지”


역시 영웅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보다.


슈퍼볼의 영웅 하인스 워드 선수의 어머니 김영희씨(55)는 7일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이어 8일 새벽 산책길에서 이뤄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역경과 고난을 딛고 훌륭하게 아들을 길러낸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 다운 강인함과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 사진 : 자신이 근무하는 고등학교 식당 동료 직원과 근무복 차림으로 나란히 서 있는 하인스 워드 선수의 어머니 김영희씨 >


“언제나 겸손하라”고 아들을 가르쳐온 김씨는 모두가 슈퍼볼 MVP 하인스 워드의 인간승리를 축하하며 기쁨에 들떠 있을 때 벌써 승리 이후의 일까지 챙겨보고 있었다.


“아드님은 이제 전성기에 접어든 것 아닙니까? 벌써 내리막을 걱정하실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아이구 떨어질 때가 왜 없겠느냐”며 뻔한 질문을 다한다는 듯 쳐다봤다.


그런 김씨의 얼굴에선 아들이 MVP에 오른 것을 몹시 대견해하면서도 혹시나 자만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어머니의 걱정이 그대로 배어났다.


워드에 대한 어릴적 교육에 대해 김씨는 “때리기도 하고, 엄하게 길렀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혼날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러 엄하게 했다”며 “그래야 세상 무서운줄 알고 겸손해질 것 아니냐”는 소신을 피력했다.


“왜 디트로이트에 경기를 보러 가지 않으셨냐”는 질문에 김씨는 “너무 떨리기도 하고, 난 그런 것 싫어. 요란한 것 싫어한다”고 했다.


김씨의 이런 말이 모두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김씨는 아들이 MVP에 뽑히고, 플로리다와 피츠버그에서 미 국민들이 환호에 휩싸였을 때에도 평소에 나가던 애틀랜타 근교 한 고등학교의 식당일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이렇게 요란하게 된게 벌써 오래 전부터야. 워드가 프로에 가니까 미국 방송과 신문들도 전화하고 찾아오고 난리야. 조용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이미 스타 어머니의 처세법을 익힌듯 “그러든지 말든지 뭐 그래라 하는 거지 뭐”라며 초연함을 드러냈다.


“똑같은 얘기 뭐하러 자꾸들 물어, 매번 똑같은 얘긴데 전에 것 보고 그냥 마음대로 쓰면되지 뭐”라며 보통사람 같으면 이르기 힘들 유명세나 명예에 대한 초탈함까지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아들 워드에 대한 무한한 자랑스러움과 애정을 잔잔하게 드러냈다.


"정말 MVP는 뜻 밖이야. 그렇게까지 될 줄은 진짜 몰랐다”고 아들이 미국 최고의 풋볼 선수에 오른 것에 대해 감격해했다.


그러나 "그 때 TV보면서 기분이 어떠셨느냐"는 질문에는 "그냥 좋았지 뭐.."라고 언제나 처럼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듯한 '아들 자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날마다 아침 7시까지 동네 고등학교 구내 식당에 출근하는 김씨는 오전 6시께면 어김없이 애견 '해피'와 아침 산책에 나선다.


김씨는 아들이 7년전 어머니 곁을 떠나며 '어머니 외로우실까봐' 사준 '해피'와 둘이 산다.


"해피는 7살이야. 워드가 애틀랜타를 떠나면서 강아지 때 가져왔으니까.


엄마 혼자서도 즐겁게 잘 지내라고 해피라는 이름까지 지어줬지. 이름이 좋아서인지 그새 정도 많이 들었어"


아들이 없는 애틀랜타 생활에서 '해피'와의 아침 산책은 김씨에게 건강 챙기기의 유일한 비법이자 아들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렇게 아드님을 훌륭하게 키우셨느냐"는 질문에는 "키우긴 뭘 키워. 애들 부모 마음대로 되는가.


다 제가 알아서 컸고 제 성품 좋은 탓이지"


어머니도 그렇게 건강하고, 낙천적이시냐는 질문에 "나는 그렇게 낙천적이지 못하다"며 "아버지도 아닌 것 같은데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역시 은근히 아들 자랑을 했다.


김씨는 힘들고 외롭고 험난했을 외아들 뒷바라지의 노고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이처럼 "다 아들 탓"이라고 아들을 치켜세웠다.


"따져보면 그 애가 다 해나가는 거지 뭐, 내가 하는게 있나.


집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생활 꾸려나가는 것도 그렇고..."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로부터 왔다"고 말하는 그 아들에 "잘한 건 다 아들 탓이고, 아들이 다 알아서 한다"는 그 어머니 다운 말이다.


아들 워드가 돈벌어서 맨 먼저 어머님께 저택과 벤츠자동차를 사들인건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애견까지 챙겨주고, 언제 어디서나 어머님 자랑을 빼놓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듯 했다.


아들 워드가 온 미국민들의 환호를 받는 슈퍼볼 MVP의 높은 자리에 올랐음에도 어머니 김씨는 지금까지 걸어온 낮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아들이 스틸러스의 본거지 피츠버그에서 개선 퍼레이드를 벌일 때도 집근처 고등학교 구내 식당에서 언제나 처럼 일했다.


그가 식당 일을 해 받는 월급은 고작 600달러.


"얼마 못받아. 워드도 자꾸 그만두라고 하고. 그래도 놀면 뭐하나.


몸 성한 동안은 계속 나가서 일해야지"


김씨는 "몇 년 전 한 두 달 일을 쉬었더니, 못살겠더라"고 했다.


하루 16시간씩 세 가지 일을 거의 한평생 해왔으면서도 워드의 어머니는 여전히 "일하는게 편하다"고 했다.


김씨가 아들이 사준 애틀랜타 근교 스톡브릿지의 저택을 매물로 내놓고, 맥도너의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한데에는 학교 일도 한 요인이 됐다.


"왜 아드님이 사주신 좋은 집에서 사시지 그랬느냐"는 질문에 "너무 크고, 여긴 학교도 가깝고 큰 집보다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김씨의 검소함은 옷차림에서도 드러났다.


8일 새벽 꽤 쌀쌀한 날씨에도 김씨는 누비 옷에 몸빼 바지 같은 추워보이기까지 할 정도의 허름한 차림새였다.


그래도 그가 백만장자 풋볼 선수 워드의 어머니임을 드러내 주는건 은색 벤츠 자동차.


김씨는 아들이 돈을 벌어 사준 벤츠 자동차를 집에서는 항상 차고에, 학교 주차장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에 모셔둔다.


벤츠가 그리 흔치 않은 맥도너에서 김씨처럼 '벤츠 타는 식당 아줌마'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한다.


김씨는 아들이 풋볼 영웅이 된 뒤, 밀려드는 전화와 인터뷰 요청에 몸살을 앓고 있다.


"아드님에게 언제 전화가 왔느냐"는 질문에 "몰라. 아예 전화선을 뽑아놓았으니까..."라고 했다.


김씨는 아들이 영웅이 된게 반갑기도 하면서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나는 요란한건 싫어. 조용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김씨는 아들과 한국에 갈 날도 기다려지지만 '엄청나게 유명해졌다는게' 걱정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인 한국 방문에 대해 김씨는 "아들이 4월쯤에 가자고 하는데, 모르겠어. 2월에 갈 지도 모르겠고 아직 안정해졌지"라고 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