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5대 로펌의 하나인 '앨렌스아서로빈슨'이 입주해 있는 시드니 시내 치플리타워 빌딩.엘리베이터를 타고 로펌 안내 데스크가 있는 23층에 내리면 창 밖으로 호주의 명물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풍경의 시드니 항이 바라보이는 접견실에서 만난 앤드루 박스올 파트너 변호사의 말에는 힘이 넘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세계 어느 로펌과도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1981년 싱가포르에 처음으로 사무실을 개설한 이래 12번째 사무실이며 중국에서는 상하이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박스올 변호사는 "아시아 지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어 앞으로 아시아 국가에 계속 진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8년 법률 시장을 개방할 때 시장을 열어야 한다는 두려움보다는 영국 미국 등에서 수년간 국제거래 분야의 경험을 쌓은 파트너들을 맘껏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앞섰다고 말했다. 법률시장 개방을 전후해 중국 캄보디아 태국 3개국에 진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게 된 이유라고 그는 덧붙였다. 법률시장 개방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독일과 일본의 경우 토종 로펌의 상당수가 영미계 로펌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지만 일부 로펌은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과 업무처리 능력 개선을 통해 글로벌화 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독일 로펌들은 법률시장 개방 이후 자국 내에서 고객유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자 동유럽으로 진출했다. 독일 토종 로펌 중 2위인 '글라이스 루츠'는 이미 1990년대 초반 체코의 프라하에 사무소를 설치했다. 이 로펌은 98년 폴란드 바르샤바에 정식 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2001년에는 중국 상하이에도 진출하는 등 아시아 지역으로 영역을 넓혔다. 독일 최대 토종 로펌인 '헨겔러 뮬러'도 비슷한 시기 헝가리 체코 벨기에 등 유럽 각국으로 변호사들을 파견했다. 특히 법률서비스 선진국인 영국에도 진출하는 과감한 전략을 택했다. 글라이스 루츠의 킬리안 밸츠 파트너 변호사는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 활동하는 독일 변호사들이 적어도 1000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 로펌들은 외국 로펌에서 근무했던 변호사들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 불고 있는 외국 로펌 선호 현상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인 변호사들이 외국계 로펌에서 파트너로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어 대개 5~10년 내 중국 로펌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토종 로펌 '킹앤우드'의 두후이리 파트너 변호사는 "외국 로펌 출신 변호사를 영입하면 그 변호사의 외국 기업 고객까지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 기업의 해외증시 상장은 외국 로펌이 도맡아 왔다. 하지만 2004년엔 킹앤우드가 이 분야에서 5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외국 로펌에서 선진 법률서비스를 배운 중국인 변호사의 활약 덕택이다. 일본은 시장 개방으로 일본 내 법률시장의 파이가 커졌다. 영미계 대형 로펌의 진출로 국제 거래나 인수·합병(M&A)건 등이 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진출한 영국계 로펌인 '레이섬앤드와킨스'에서 일하는 데이비드 샤피로 변호사는 "도쿄에 사무소를 둔 이후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지사와 연계해 다국 간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많이 했다"며 "일본 기업이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가서 외국 로펌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REITs(부동산 투자신탁)를 활용한 부동산 증권화 바람 역시 외국 로펌들의 일본 진출과 함께 나타난 현상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변호사회의 준 맥파이 회장은 "한국 로펌은 특정 사안에 대해 분야별 변호사를 총동원해 해법을 내놓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부문이 약한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이 같은 단점들을 보완하며 규모를 키워 나간다면 법률시장 개방을 계기로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국제 로펌이 될 수 있다"고 주문했다. -------------------------------------------------------------- 특별취재팀 김문권(시드니)·김병일(도쿄) 차장 정인설(프랑크푸르트)·김현예(런던)·유승호(베이징) 기자